춘향전에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라는 표현이 있다. 거지로 변장한 이도령이 장모가 차려준 밥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이다.
강요배의 <마파람 1>은 이런 일상적인 바람의 의미를 넘어선다. 20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제주에 정착한 화가는 늘 부는 제주의 바람에 포착하였다. 그는 자연을 키우는 것은 빛과 물보다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처음 그린 바람은 마파람이었다.
<마파람 1> 캔버스에 유채 72.7*116.8 1992
먹장구름이 휘모리장단처럼 밀려오는 심상찮은 노을빛 아래, 밭담 위로 솟은 대죽 낭(수숫대)이 파초처럼 큼직한 잎사귀를 퍼덕거리고 있다. 아니, 온몸으로 절박한 시위를 하고 있다.
제주서 나고 자란 나는 이 그림은 오래 볼 필요도 없었다. 언뜻 보는 인상만으로도 오랜 시간 묻어두었던 유년의 고향이 아우성치며 달려왔다. 마파람 속에 잉태된 모태 정서의 뿌리. 강요배의 그림 <마파람 1>에는 내가 살아온 내력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어쩌면 제주도 전체가 요약되는 역사성으로 박진감 있게 다가온다.
기름진 흙을 만들지 못하는 척박한 제주 땅은 조밥 섞인 보리밥 한 덩이를 달게 먹기 위해서 과도한 노동을 요구했다. 메밀이나 조는 여름 볕이 과랑과랑 정수리를 쪼을 때도 김을 매 줘야 자란다. 조 김을 맬 때, 잘 익은 자리젓을 콩잎에 싸서 먹으면 언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게 입에서 녹았다는 어머니는 밥 한술의 수고로움을 모질게 가르쳤다. 지금도 나는 수채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밥알을 심상하게 보지 못한다. 쉰밥도 찬물에 두어 번 헹구면 탈이 나는 법이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으니까.
어머니는 마파람을 '첩 바람'이라 했다. 이 바람이 지나가면 사방에 곰팡이가 슬고 음식이 쉬거나 썩고 관절염으로 뼈가 녹아내리며 집안을 흉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바람은 그러나 역사의 바람이기도 하다. <마파람 1>을 보고 있으면 도스트 엡 스키의 소설 "악령" 한 구절이 떠오른다.
-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어디선가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것만 같다
여기서 악령은 무정부주의자와 무신론자를 의미한다. 등장인물 23명 중에 14명이 죽어나가는 토스트 엡 스키 소설처럼 저 마파람은 외세에 의해 제주공동체가 무참히 파괴되는 4.3의 전조처럼 보이는 것이다. 제주도에 악령과 같은 기운들은 역사 갈피마다 있었다. 조선시대부터만 보아도 조정은 진상품을 잘 받으려고 제주도민들을 섬 안에 가뒀다. 전복, 우황, 귤 등을 제대로 걷으려면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출륙 금지령으로 200년 동안 제주사람을 묶어놨고 금지령이 풀린 후에도 조정과 가렴주구의 수탈에 시달려야 했다. 다른 지역 사정도 비슷하겠지만 마을에 세워진 관리들의 송덕비는 지역 사람들의 마음과 대부분 멀리 있다.
아일랜드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그 제목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했다. 아일랜드는 제주와 비슷한 역사와 자연을 가진 나라다. 외세인 영국을 상대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싸운 형제는 부분적인 독립을 이뤘다. 하지만 어떤 정부를 원하는지에 따라 갈라서야 했고 상황은 부르주아 정부를 선택한 형이 민중의 편인 사회주의 정부를 원한 동생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되는 내전으로 이어진다. 해방 후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했다.
제주 4.3도 변방의 한 지역이 해방 후 의젓한 삶을 살고자 하는 과정에서 국가 공권력에 의해 핵폭탄 수준의 학살을 당한 역사를 안고 있다. 아일랜드 보리밭을 흔드는 역사의 바람. 주인공 다니엘의 조국의 가치에 대한 처절한 물음. 그 속에 스러져간 순결한 젊은이들의 넋, 그들은 역사의 진보, 다수의 평등을 위해 역사의 제단에 바쳐진 희생물이었다.
겨울 제주 마을들을 돌아다녀 보라, 어느 마을에도 팽나무 한 두 그루가 버티고 있다. 삭풍에 쓸려 한쪽으로 기운 나무는 바람에 저항하며 살아낸 제주의 자연과 사람의 모습이다.
- 매찬 칼바람에 살점 깎이운 팽나무는 검은 뼈가지로 버틴다. ( “제주의 자연 “초대전 작가 말 중)
강요배의 팽나무 그림들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고통은 더 큰 고통이 위로가 되는 것처럼. 그래서 화가는 말한다, “시련과 같은 바람을 나무가 이기면 우리 삶도 이겨내지 않겠는가”라고.
이 그림을 보는 내 마음에도 바람이 분다. 거칠고 흉흉한 바람과 함께 자랐던 어떤 운명과도 같은 DNA가 내 가슴 밑바닥에 있는가 보다.
어머니는 겨울 하늬바람은 '남편 바람'이라고 두둔했다. 맵차게 들어와 어수선한 일상의 잔 가지를 시원하게 정리하는 위엄 있는 바람이라는 것이다. 유교 가정에서 자란 가부장적 사고 속에 나온 말일 것이다.
샛바람. 33.4*53.0, 1993
마파람을 그린 화가는 다음 해 샛바람을 그렸다. <마파람 1>이 바람을 의식화, 대상화했다면 <샛바람>에서 화가는 자연 속으로 성큼 들어간 것이 아닐까. 검은 현무암으로 둘러싸인 밭담은 거친 바람으로부터 여린 싹을 보호하기 한 병풍으로 보인다. 밭담 모퉁이에서 바람이 콸콸 쏟아지는 그림. 내 머릿속으로도 진초록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것 같았다.
샛바람은 동풍이다. 북쪽에서 하늬바람이 사람과 자연을 후려치며 정신을 얼얼하게 해 놓고 가면 어머니 따순 손길처럼 청보리 순을 자라게 하고 매화며 수선화 꽃망울을 틔우게 하는 부드러운 바람이다. 어머니는 ‘ 본처 바람’이라고 했다.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고 없는 살림도 포슬하게 만드는 소생의 바람이라는 것이다. 보리농사에 소중한 이 바람도 여러 날 억세게 불면 ‘ 궁근( 흔들리는) 샛보름’이라 했고 , 잔잔히 불어오면 ‘ 지름( 기름) 샛보름’이라 좋아했다.
나는 이 그림을 보러 5개월 된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전시장으로 갔었다. 점찍어 사고 싶었던 그림이었다. 당시 내 상황이 3살, 1살 아이 돌보느라 집안에서 뱅뱅 돌 때였다. 게다가 젖을 먹어야 해서 아기보다 먼저 식사를 했는데 허겁지겁 먹어서 금방 먹고도 먹은 기억이 안 났다. 저 그림을 거실에 걸어놓으면 분주한 육아시간들이 덜 피곤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시기는 돈이 고이면 이유식을 할 수 있는 큰 냉장고가 지출 우선순위에 있었다. 그림값 150만 원을 지출하는 데 망설이고 있는 동안 그림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강요배의 바람은 그가 그리는 제주의 자연, 삼라만상에 스며 20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강요배는 ‘북촌리 학살사건’을 그렸다.
< 불인> 1948년 음력 12월 18일, 북촌리 마을 전체가 불길에 타들어가는 장면을 표현한 그림이다. 인가가 불타고, 마을 팽나무도 타고 , 북촌 바다 성난 여울은 해일처럼 마을을 덮칠 기세다. 그날 하루만 300여 명이 총살되었는데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부재함으로 더 깊이 느끼게 한다. 저 불길 속에 울부짖는 소리는 아마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우리 속 짐승의 단말마일 것이다.
화가는 노자의 도덕경 "천지 불인(天地不仁)에서 제목을 따 왔다고 한다. 강요배 그림에서 제목은 그림세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연은 어질지 않다고, 그저 존재할 뿐이라고.
북촌리 마을 역사를 품고 있는 수령 260 년 팽나무
우리나라에 30년 단위로 부는 민주화 바람은 샛바람일까, 북풍의 하늬바람일까. 아니면 미적찌근한 마파람을 몰아내는 태풍인가. 태풍은 바다 밑까지 훑고 뒤집어 새로운 먹이사슬을 만드는 자연계 혁명의 바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