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신부>, 1977, 47*34
불안에 점령당한 듯한 얼굴, 특히 눈에 집중되어 내 정신이 빨려 들어갔다. 젊었을 때는 몰랐던 작가의 여성 이미지가 육체적으로 쇠락의 길을 가고 있는 나의 침침한 눈으로 깊숙하게 들어오는 것이다.
어느 날, 천경자의 그림에 꽂혔다. 내 몸이 노쇠해지고 지인들의 부음도 간간히 들으며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서일까, 해석되기 어려운 삶의 이러저러한 복병과 더불어 여전히 가족이란 내게 아픈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니 그보다 ‘나는 여전히 빈 손’ 이라는 헛헛함 때문일 것이다. 젊어서 애타게 이루고 싶던 바램들이 오십 후반에 장막을 걷어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허기가 꽃과 나비와 뱀에 둘러싸인 여성의 모습에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이다.
천경자가 초상화처럼 그린 얼굴들 중에 일본유학 때 그린 외조부의 모습을 빼면 남성도 어린아이도 늙은 여성도 거의 없다. 대부분 늘씬한 팔등신, 구등신의 몸이다. 아마 한국 평균치의 여성은 그런 몸을 젊어서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미로의 비너스로 대표되는 8등신 몸은 ‘이상미’이지 현실의 미가 아니듯.
동공이 크고 다크 서클이 선명한 그 눈이 응시하는 곳은 하루 세 끼 밥을 먹어야 사는 현실세계 너머에 가 있다. 여인의 눈빛은 이상의 문턱도 넘어 사후 영혼의 세계에 가 닿은 듯 아득하고 멀다. 그리고 슬픔에 차 있다. 신기한 것은 그런 눈빛이 내 자신의 근원을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천경자가 원화를 보며 감탄했다는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이나 <봄>의 여성에게서 나는 육체의 풍만한 화려함을 실컷 볼 수 있었지만 그 아름다움 너머의 사유를 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천경자 그림의 여성이나 꽃은 소재이고 그림의 주제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
<탱고가 흐르는 황혼> 48*43, 1978
젊어서는 천경자그림이 퇴페적이라 생각했다. 이십대에 잡지에서 오려 낸 <탱고가 흐르는 황혼> 을 방 귀퉁이에 붙이고 오랫동안 본 적이 있는데 담배 유혹을 불러일으켰다는 것 외에 별다른 감흥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황혼이라는 말과 담배연기와 깡마른 몸에 보라색 슈트를 입은 여인의 기미낀 얼굴이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탱고음악을 즐기지 않아서인지 그 분위기는 내게 ‘나른한 퇴폐성’ 이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몇 몇 그림은 ‘인생이란, 삶이란...’ 화두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30*162, 1976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같은 그림을 보았을 때는 고갱의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의 천경자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이모저모 특히, 전생(?)에까지 잠간 생각이 건너가기도 했다. 그후 그녀의 그림은 내 주변에서 사라졌다.
고갱<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캔버스에 유채, 139*375 ,1888
그녀의 그림이 다시 생각난 것은 7년 전, 암수술을 받고 병원침대에 누워있을 때였다. 오십 대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내 몸이 고꾸라진 것이다. 하얀 시트에 누워 회복을 취하는 내 마음은 착잡했다. 이렇게 몸이 고장나고야 나 같은 사람은 일에서 놓여나 쉬어보는구나 싶어 온갖 회한이 밀려왔다. 내 몸 하나가 집안에서 몹시 귀할 때라 시아주버님은 내 소식을 듣고 소주를 마시며 울었다고 했다. 수술 회복기에 들어간 일주일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당시 나는 삶의 의욕도 뭐도 없는 것 같았는데 불현듯 천경자의 그림 <생태(生態)>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생태>, 51.5* 87, 1951
평소 내가 제일 몸서리치게 싫은 것이 뱀이었다. <생태>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던 서정주의 <화사> 한 대목이 떠오르며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천경자라는 화가는 내가 접근할 수 없는 대단히 탐미적인 사람인가보다 했었다.
몇 십 년이 흐르고 , 꺾인 내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은 뱀 35마리 <생태>그림이었다.
젊어서는 이해 어렵던 그 그림이 단박에 이해되면서 ‘아 아, 그 분도 살아보려고 애를 썼구나’ 싶었고, 나도 모르는 생의 의지가 링거병을 매단 채 병원을 돌게 했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43*36, 1977
이 그림은 2016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천경자 1주기 추모전’ 에서 보았다. 숫자는 화가가 결혼한 나이인데 그림은 53세에 완성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청회색 계열로 되어있지만 차갑다는 느낌이 없고 오히려 따뜻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현무도>의 뱀을 떠올리게 하는, 꼿꼿한 뱀 4마리는 그가 부양해야 할 4명의 자녀이다. 아버지가 부재한 네 아이는 그녀를 살게 만든 동력이기도 하고 버거운 짐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신이 주신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진 강하고 의연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보였다. 머리에 화관처럼 두른 뱀 네 마리는 마라톤 우승자의 월계수관 만큼이나 빛나 보였다. 작가는 이 그림을 그리며 행복했을까.
화가 천경자의 이력을 보면 그녀의 22세는 한 생활인으로, 여성으로도, 모성으로도 막막하고 힘든 시기였다. 화가는 그 고통의 시간을 상처난 조개만이 만들 수 있는 진주의 시간으로 회복했다.
화가의 그림에서 가족은 뱀으로, 이루지 못할 사랑은 장미로, 여성으로서의 갈망은 긴 목과 눈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본다.
작가가 인물을 그릴 때 그 이미지는 화가 자신을 닮는다고 한다. 독자가 그림을 볼 때는 어떨까? 독자 또한 자신의 어떤 모습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천경자의 그림에 끌린다는 것은 그 속에 내가 현실 속에 이루고픈 삶의 모습이나, 자잘한 일상을 훌쩍 넘어 도달하고픈 꿈과 갈망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화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다양한 여인의 모습은 작가의 분신일 것이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미인도> 위작시비가 한창일 때 TV에서 천경자 화백이 “내 자식을 몰라보는 어미가 있느냐”고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나는 저 말 하나면 모든 게 확실하다고 믿었다. 미술계의 내적 사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25년이 지난 오늘까지 프랑스 미술품 감정회사(뤼미에르 광학연구소)가 위작으로 판명한 것도 다시 뒤집는 한국미술계의 현실은 예술이 상품화되는 과정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많은 오해를 감수하며 예술적 자존심을 지켜왔을 작가의 외로움을 생각해본다. 그녀는 진짜 예술가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