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수 시계
A watch with waterproof
시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물건 중 하나다. 어릴 적에는 당시에 인기가 있었던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파란색 플라스틱 전자시계를 가졌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즈음에는 대한민국 브랜드인 '돌핀' 전자시계를 착용했었다. 그것이 금은방을 운영하시던 고모부의 선물이었는지, 아버지께서 고모부 금은방에서 사다 주신 선물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후자일 것 같다. 지금도 상당히 그런 편이지만, 그 당시에는 물건을 너무 자주 잃어버렸다. 그래서 시계도 자주 바뀌고는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가 들어서 군대에 갈 때에는 훈련소 앞에서 파는 1만 원짜리 시계를 사서 썼다. 훈련소 들어가기 전에 시계를 산 것으로 보아, 그때도 시계를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분명 방수가 된다던 시계는 샤워 몇 번과 빨래 몇 번에 습기가 차서 고장이 나고 말았다. 전경으로 자대 배치를 받아서 서울로 갔을 때에는, 다시 '돌핀' 시계를 찼다. 그것 역시 고모부의 선물이었는지, 아버지의 선물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일경이 되고 조금 뒤에 샤워장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는 월급을 받아서 시계를 샀다.
그 후로도 시계를 한 번 더 잃어버렸다. 제대하기 전에 샀던 스와치 쁘띠 쓰공드 제품이었는데, 헬스장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방수가 안 되는 시계이다 보니, 풀어 놓고 운동과 샤워를 한 후에 그냥 두고 온 모양이었다. 물론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이번 서른다섯 살 생일에 아내에게 시계를 선물해 달라고 말했다. 이미 가진 것이 몇 개 있었지만, 뭔가 새로운 시계를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남편의 외벌이로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나가는 아내이기에, "사도 좋다"라고 허락해 준 것 자체가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그로 인해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시티즌 프로마스터 다이버 모델을 갖게 되었다. 아마 2017년 후반 즈음 발매된 모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시티즌 에코 드라이브 프로 마스터. 전문 다이버가 사용 가능한 수준의 200M 방수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냉장고 근처에서 작용하는 자성에 견딜 수 있는 항자성을 겸비하고 있다.
시계 중에서 어떤 시계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떤 브랜드를 말하기보다 '방수가 잘 되는 시계'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을 보여주는 기능 외에 시계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기능이 '방수 기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을 만났을 때에도 시계가 고장 날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물건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제법 진정한 주인으로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은 웬만한 시계의 가격도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기 때문에, 시계를 손목에 모시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아는 '오메가'나 '롤렉스' 같은 시계들은 SNS 사진 속에서 번쩍번쩍 빛을 발하지만, 그 시계가 착용자의 일상과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이를테면 매스컴에 의해서 가장 많이 노출되는 시계 중 하나인 롤렉스 서브마리너나 오메가 씨마스터는 그 시계를 차고 바닷속을 유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시계들이 진짜 바닷속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사진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 고급 외제차의 핸들을 잡고 있는 손목 위에서 자신의 이름을 뽐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것도 그들의 일상에 녹아든 모습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방수가 잘 되는 시계를 예물로 장만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시계를 받은 남성이 요트를 타거나, 수영을 하거나, 다이빙을 즐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적어도 집안에서 수중 레포츠를 즐기는 건 어떨까 싶다. 간단한 설거지를 하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 같은 일들 말이다(셀프세차는 제외한다. 그건 자기자신을 위한 일이니까). 생각보다 일상에서 물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집안일을 하느라 반지나 팔찌도 제대로 착용하지 못하는 아내들 대신에, 방수 잘 되고 튼튼한 시계를 차고 물 묻히는 일들을 대신해 주면 고마워할 것이다.
아내가 사 준 시계가 집으로 도착했을 때, 나는 손목에 맞게 시계줄을 조정하고 착용한 후 바로 물에 담가 보았다. 물론 흠집이 난다면 마음이 아파서 소심해지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시계를 내 일상에 충분히 참여시키고 싶다. 방수가 잘 되는 시계이니 만큼, 욕조나 설거지 통에서 열심히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면서 말이다.
2013년 5월 28일부터 지금까지 즐겨 착용하는 시계. 방수능력은 20기압(200m), 다이버용 200이 아니어서 샤워나 수영 정도에만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
2020년 9월, 아내가 큰 맘 먹고 허락해준 오리스 아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