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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Sep 19. 2018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곳

김광규,  「영산」

1

우리는 종종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말하면서, 그저 주어진 일을 수행하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추구하는 이상도 없이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희망이나 이상을 갖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희망이자 이상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사람들(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자 꿈이자 이상인 사람들)을 많은 사람들이 그럴싸하게 생각하는 원대하고 낭만적인 이상에 빗대어 비판해서는 안 된다. 누구의 마음속이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성한 곳이 있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2

내 어렸을 적 고향에는 신비로운 산이 하나 있었다.
아무도 올라가 본 적이 없는 영산靈山이었다.

영산은 낮에 보이지 않았다.
산허리까지 잠긴 짙은 안개와 그 위를 덮은 구름으로 하여 영산은 어렴풋이 그 있는 곳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영산은 밤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구름 없이 맑은 밤하늘 달빛 속에 또는 별빛 속에 거무스레 그 모습을 나타내는 수도 있지만 그 모양이 어떠하며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영산이 불현듯 보고 싶어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더니 이상하게도 영산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미 낯설어진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산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신과 인간의 결합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환웅과 결합한 웅녀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변한 존재, 일종의 '사이존재(하이브리드)'이다. 다양한 존재의 결합 혹은 화합이 단군신화의 핵심적인 가치 중 하나라면, 그 중심 장소로서의 '태백산[太白山]'은 신성한 기운이 가득한 장소이다. 태백[太白]은 매우 밝다는 뜻을 한자로 옮긴 것이고, 산은 말 그대로 가장 높아서 하늘에 가장 가까운 땅이다. 우리는 이 산에서 땅과 하늘을 연결하며 현실과 초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조화를 추구해 왔다.


김광규 시인은 아마 그런 것을 본 모양이다. 신령스러운 산은 낮에도 밤에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확실히 볼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반쯤은 이 땅위의 것이고, 반쯤은 하늘의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산은 보이지도 않고 사람들은 "그런 산은 이곳에 없다고 한다." 분명 기억하고 있는 그 산이 시인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에 의해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3

우리는 무의식 깊은 곳에 각자의 영산을 묻어두고 산다. 영험한 그 산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존재할 수 있지만 존재할 수 없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는다. 그 두려움의 정체는 아마도 그것이 나의 현실을 송두리째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영험하고, 서로 다른 세계를 관통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영산[靈山]을 우리는 부정한다.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마치 내가 푸념하고 있는 현재야말로 내가 꿈꾸던 바로 그 세상인 것처럼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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