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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24. 2019

아무리 고민이 많아도 잠을 잘 잔다. 그리고 꿈을 거의 꾸지 않는다.


잠은 내가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수단이다.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 현실의 그림자가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고민을 시작할 수 있다.


꿈을 꿀 때는 주로, 살해를 당하거나, 전쟁에 참여하거나, 군 생활을 다시 하거나, 박사논문을 쓰던 때로 돌아가고는 한다. 어떻게든 그 과정을 지나 현재에 다다라 있음에도 불구하고, 꿈속에서는 그 일을 도무지 해낼 수 없어서 힘겨워한다. 나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걱정과 고민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잠을 잔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어려움 때문에 잠을 잤다. 수학여행을 가거나, 수련회를 갔을 때, 나는 남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대학 엠티 때도, 답사 같은 것을 갔을 때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잠을 자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이미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상황 속에서, 잠이 오지도 않으면서 일찍 잠자리에 누운 나는 소음 속에 있으면서도 나만의 침묵 속에 몸을 숨길 수 있었던 것이다.


낮잠을 자지 않는다. 아주 피곤한 날에는 낮잠을 자지만, 웬만하면 밤에 잘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 낮잠이 두뇌 활동이나 신체 건강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들었지만, 나는 낮잠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요즘, 객원교수 신분으로 얻게 된 작은 연구실에서, 나는 종종 낮잠을 잔다. 아니,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 본다. 밝고 따뜻한 바깥세상을 피해, 나만의 어둠이,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 것이다. 밤잠만으로는 부족한,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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