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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과 수직!

<일대종사>에서 읽는 삶의 의미

by 정선생

중국 무술이 격투기 앞에서 처참히 박살 나는 영상이 화제였다. 중국 전통 무술을 박살 낸 격투가는 무술이라면 실전에서 효용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형식과 의미에 치우쳐 아무 쓸모없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자국의 문화를 이토록 비아냥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도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일본의 사무라이, 중국의 무술은 세계적으로 마케팅이 잘 돼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태권도가 전 세계에 도장을 보유하고, 수련자를 확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과 중국의 그것에 비해 충분히 '상품화'되지는 못한 듯싶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다뤄지는 동양의 전통은 일본과 중국이 여전히 압도하는 듯 보인다.

영화 <일대종사> 포스터, 위키피디아

왕가위 감독의 영화 일대종사(THE GRANDMASTER, 2013)는 '엽문'의 일대기를 다룬다. 견자단이 엽문을 화려한 액션으로 알렸다면, 이 영화는 엽문의 무술관 그 자체를 알린다. 왕가위 감독과 양조위의 만남이 영화의 매력과 품격을 더한다. 나이 든 장쯔이와 장첸의 연기도 영화에 세밀함을 더하는 듯하다.


영화에서 전하는 엽문의 무술관은 간단하다. '가로와 세로'다. 지면 수평으로 눕고 이기면 수직으로 서는 것이다. 이 간단한 진리는 그의 제자 이소룡이 우리의 태권도 등을 결합해 절권도를 만드는 데에 자양분이 된다. 이소룡을 존경하는 견자단이 태권도의 발기술을 익혔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동작 하나마다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그런 건 없고, 펀치는 그냥 펀치일 뿐'이라고 말하던 그다(견자단이 이와 같은 언급을 한 때는 독일에서 티브이 드라마를 촬영할 때다. MBC에서 방영된 무술 관련 다큐에 견자단이 나왔었다. 영상을 구할 수 없어서 출처를 정확히 하지 못한다). 수평과 수직이라는 간단한 권법의 의미. 이것이 각종 무술을 섭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혹은 각종 무술을 인정하는 포용력인지 모른다.


앞에서 중국 전통 무술을 격파하며 비아냥하던 격투가 역시 엽문의 그것과 같이 수평과 수직만을 중시하는 듯싶다. 그러나 그가 이기는 행위를 통해 중국 무술을 폄훼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것은 곧 정치적인 것이 된다. <일대종사>에 등장하는 가상 인물 '마상'과 '궁이(장쯔이)'도 이기고 지는 것 이외의 탐욕과 복수에 젖는다. 그래서 그들의 끝은 좋지 않다. 반면 '가로와 세로'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엽문에게는 응어리가 없다.


실제 내성적이고 낙천적이었다는 엽문에게도 탐욕이 존재했을 게다. 그러나 그 욕망이 그저 자신의 승리를 향하고 있을 때 그것은 해롭지 않다. 다만 그것이 타인을 향하고 있다면, 언제나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엽문의 제자인 이소룡 역시 "진정한 무술인은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일대종사 마지막 장면에서 인용하는 문구)라고 말했단다. 최고의 무술인이 되기 위해 그는 다양한 무술을 포용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반드시 타인을 무너뜨릴 필요는 없다. 그것이 중생의 삶을 보살피는 무술가, 영웅의 본질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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