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특별 사업과 다른 소일거리로 돈을 벌고 있을 때 , 나는 정말 물욕이 강했다. 돈을 벌면 대부분 술값과 물건값으로 나갔는데, 물건은 주로 학용품 위주였다. 그때 장만했던 비싼 물건이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끊은 술 탓이다. 솔직히 평소에도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만 말이다.
그나마 그때 샀던 고가의 학용품(?) 중에 전자수첩은 남아 있다. 이제는 구석기 물건 취급받지만, 당시에는 대학생이나 취준생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다양한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물건을 내놓았지만, 가지고 싶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당시 atree라는 회사의 신제품 중 다양한 어학 기능과 굳이 DMB와 라디오, 8GB SD카드를 인식할 수 있는 최고 사양을 장만했었다. 지금은 가끔 아주 가-끔 충전해서 사전을 찾거나, 어린 아들의 장난감으로 활용한다.
2009년에 샀던 전자사전.당시 3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노트북과 닮은 모습이 좋아서 샀다. 당시 인기있던 DMB까지.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어느 문화심리학자 말마따나 '터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물건이 주는 위로와 쾌락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시대에 그 물건은 사람보다 나은 존재가 된다고 했다.
그에 반해 이 전자수첩은 정말 불편하다. 켜는 데도 한참이 걸리고, 터치를 하기 위해서는 터치 펜(연필로도 된다, 이쑤시개도…)으로 '꾹꾹' 눌러줘야 한다. 인식이 아주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글씨는 훈민정음해례본에 버금가게 써야만 제대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물건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너무 쉽지 않아서 매력적이다. 매끄러움은 쉽게 망각된다. 번거로움은 조금 더 오래 각인된다. 종이사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탄식하던 사람의 말도 공감된다. 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나는 사실 너무 많은 물건을 쉽게 구해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 됐을 게다.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사는 나도 혹은 우리도, 너무 많은 것들을 쉽게 보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