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bout THINGs

일기장

by 정선생

글을 쓰고, 시를 쓰고, 심지어 글쓰기를 강의하면서도 일기 쓰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어릴 적에는 의무로 일기를 썼다. 담임선생님의 검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써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게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일기장이 상자에 고스란히 남았다. 글씨는 갈수록 엉망진창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억지로' 기록하려니 더욱 그랬던 모양이다. "글씨를 예쁘게, 내용을 알차게 써 보자" 같은 담임선생님의 메모도 간간이 눈에 띈다. 언젠가 이 일기장을 아내와 함께 본 적이 있다. '텔레비전'을 'TV 전'이라고 쓴 걸 '들켜'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지금도 글자를 많이 틀린다.


요즈음은 일기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아니, 일기를 쓰더라도 굳이 필기구로 끄적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해야 할 듯싶다. 필기구로 끄적이는 일이 생각을 찬찬히 정리하는 일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생각보다 빠른 손가락으로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기록하는 시대가 됐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


굳이 많이 쓸 필요도 잘 쓸 필요도 없었을 게다. 그저 또박또박 즐겁고 슬펐던 일만 기록하면 됐는데, 그 간단한 일을 충분히 즐기지 못해 아쉽다. 이제는 그런 일을 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아니, 조심스럽게 꺼낸 몇 글자 기록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공감과 충고를 남겨주는 선생님이, 더 이상 내게는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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