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가 나거나, 연필을 쥐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히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요즘은 그런 일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공부 잘한다고 성공하는 시절도 아니고, 글이라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다. 아니면 지문이 지워지든가. 물론 고등학생까지는 필기구를 이용한 공부가 여전히 요구되는 만큼, 손가락에 박힌 굳은살을 훈장처럼 여기는 일도 있을 듯싶다.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한 시대라고 해도, 자판을 두드리며 쓰는 글맛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 중에는 만년필이나 연필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작성한 원고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종이에 필기구든, 두드리는 자판기든 조금 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감각을 선호하는 행위처럼 보인다. 만년필이나 기계식 키보드가 꾸준히 팔리는 걸 보면 말이다.
만년필은 '죽마고우'가 될 수 있고,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이 전자제품인 이상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트북은 맹렬히 싸우다가 결국 전사하거나 퇴역해야만 한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신성이 나타나면, 그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야 한다. 전자제품에는 관록이 없다. 늙으면 그대로 끝이다. 만년필의 관록이 쓰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면, 노트북은 시간이 지날수록 화나게 하고, 답답하게 할 뿐이다.
이 노트북은 아내의 석사논문, 나의 박사논문과 몇 편의 소논문, 그리고 브런치에 이르기까지 많은 글을 생산하고 있다. 다른 업무나 학생들의 글쓰기 첨삭은 당연하고 말이다.아내가 쓰던 노트북을 아내의 석사 졸업부터 물려받아 쓰고 있다. 이 노트북의 제품군이 '엑스노트'라는 걸 보면, 5년은 족히 넘었으리라. 느리고, 답답하고, 가끔은 응답 없음 메시지를 보이며 화나게 만들기도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을 좋아한다. 화면을 함께 보면서 아내와 사랑을 싹 틔웠고, 아들의 탄생을 기다리며 박사논문을 썼다. 지금은 브런치를 통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나의 직업을 위한 도구로서도 몫을 다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학술지에 응모할 논문을 묵묵히 잘 작성해 주었다.
제법 반질반질 윤이 난다. 나 같은 사람이 이러한데, 다른 작가들의 노트북은 글자가 지워버렸을지도 모르겠다.아내가 요즘 나의 청바지와 노트북 교체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한다. 나도 노트북을 하나 더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50만 원 안으로 찾아보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전자제품 상점에 갔을 때처럼, 워드만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저사양 노트북을 장만하려고 한다. 이런 나의 모습을 아내가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전자제품은 수명이 짧다. 고성능으로 태어나 컴퓨터 게임도 하지 않는(물론 스마트폰 게임은 한다) 나에게 와서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떠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싶다.
왕성하게 글을 만드는 작가들의 노트북 자판에 비할 것은 못되나, 제법 윤이 난다. 쓸 수 있을 때까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이 제품을 써서는 절대 안 되는 치명적인 이유가 생길 때까지, 버리지 않고 쓸 생각이다. 전원을 켜고 부팅 완료까지 3분여, 바탕화면에서 인터넷 연결하는 데 3분여, 워드프로세서나,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는 데도 1분 정도씩 걸리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초라한 역사를 스스로 존중하는 일인지도 모르기에 말이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