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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Apr 23. 2020

‘-’(마이너스) 비범함

평범함의 모순적 폭력성을 느끼며

물론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누군가에게 “당신은 평범한가요, 비범한가요?”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자신이 ‘평범’하다고 말한다. ‘평범한 한국사람’, ‘평범한 학생’, ‘평범한 직장인’, ‘평범한 남편(아내)’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한다.

‘평범함’을 이루는 요소들은 실로 다양하겠지만, 그것이 단순하게 정리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해지기가 더 힘들다. 평범함은 외적인 생활수준을 넘어서서 감정과 생각까지 보편적이어야 함을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복잡 미묘한 ‘평범함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기는 피곤하기만 하다.

가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고민을 상담하는 내용을 접할 때, ‘평범함이 지닌 모순적 폭력성’을 느끼고는 한다. 힘들게 전한 고민에 ‘이럴 때 보통은’, ‘평범한 사람이라면’과 같은 전제를 덧붙여 전달하는 대답은 마치 고민을 전한 사람으로 하여금 ‘상식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평범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듯 느끼도록 만들 것만 같아서다. 모두가 달라서 고민하는 것일 텐데, 되돌아오는 답은 ‘이럴 때 보통은’이라니. 보통에 대해서 잘 알고 그렇게 살 수 있었다면 고민할 이유가 있었을까.

확실히 평범함은 모순적이다. 많은 사람이 평범함을 거부하자고 말하면서도 남들이 누리는 평범함을 향해 달리고 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해서 대학에 가기를 원하고, 졸업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취직하여 평범한 직장인이 되기를 꿈꾼다. 평범한 정규직 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 평범하게 결혼하여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한다. 평범한 연애, 평범한 식사, 평범한 일상과 평범하고 소박한 꿈! 어쩌면 우리는 ‘자신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라고 선언하면서 사실은 모두가 꿈꾸는 ‘위대한 평범함’을 향해 나아가는지도 모른다. 잔잔한 바다를 항해하든 거친 파도와 싸우며 항해하든 결국엔 단단한 육지에 발 딛기를 원하듯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꽤 평범하지 않았다. 공부도 못했고, 앞으로 돈이 되는 공부를 하기 보다는 시 쓰고 종이 접기나 하면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다. 보디빌딩을 열심히 해서 헬스클럽을 차리고, 열심히 몸을 만들고 어울리지 않게 시나 쓰면서 여가를 보내고 싶었다. 혹은 군인이 되고 싶었다. 철없는 고등학생의 몽상이었다.

그 모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평범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았다. 대학 졸업까지는 제법 평범하게 잘 버텨왔지만, 대학원을 졸업하면서부터 ‘평범함’에서 확실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지방대이긴 하지만 훌륭한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대학원을 졸업했음에도 나의 삶은 평범함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을 겨우 벌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꿈꾸는 그 ‘평범한 삶’이 아내와 더 많은 집안일을 함께하고,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행복’을 가로막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평범함을 이루게 되어 평범한 행복을 조금 덜 누릴 수 있어야지만, 우리의 미래가 더 밝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는 나를 되돌아본다. 아버지와의 즐거웠던 기억은 거의 없고, 오직 엄마와의 추억으로만 가득한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아버지는 평범한 노동자였고, 우리 집안은 아버지의 평범한 경제활동으로 ‘월세-전세-자가’라는 평범한 순서로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의 평범함 덕분에 공부를 게을리했음에도 꾸역꾸역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대학원 진학까지도 아버지가 다니던 평범한 회사의 학자금 덕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아들을 바라본다. 아빠를 찾으며 목마를 해 달라며 팔을 뻗는 15킬로그램이 훌쩍 넘은 아들을 바라본다. 목마를 태워주면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는 이 아들의 행복감이 미래의 행복과 반드시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몫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지금 이 평범하지 못함에서 벗어나 평범함을 향해 돌진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돌아다닌다.


이런 고민이 결코 배부른 소리만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모순덩어리이다. 사랑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결혼해 놓고도, 결국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함께 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삶. 아이들에게 수많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주말에는 일주일간 쌓인 피로와 짜증을 아이들에게 드러내고 마는 삶. 이런 삶을 견뎌내는 모두가 이런 고민을 했으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배운 건 책 읽고 글 쓰는 일밖에 없는 사람이니, 유치하더라도 정신승리를 추구할 수밖에.

문득 평범함의 반댓말로 내세우는 비범함은 언제나 ‘+’를 향해 있음을 생각한다. 평범하지 않음은 모두 비범함일 터인데, 어쩐지 비범함은 좁디좁은 꼭대기에 깃발을 꽂을 수 있는 능력만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일생동안 이곳에서는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처럼, 일생동안 드러나지 않을 언어의 잉여를 상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니 아무도 인정하지 않겠지만, ‘위대한 평범함’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당신, 스스로에게 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 “나는 비범한 사람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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