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성장을 위해 사랑을 미루다?

by 정선생

1. 두 편의 애니메이션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괜찮은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제나 소재가 굉장히 다양하고, 그 기법도 날로 발전하고 있지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애니메이션 강국 하면, 미국과 일본을 꼽고는 합니다. 정치적인 성격, 사상적인 문제점들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자체를 문제 삼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여기에서 두 작품의 제목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이니셜 D>, 다른 하나는 <언어의 정원>입니다. 이 두 작품을 동시에 언급하는 것은 어쩐지 생뚱맞아 보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밝은 분이라면 더욱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작품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고, 자세하게 분석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다만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찾아서 보시면 되겠습니다. 무척 재미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두 애니메이션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사랑'을 잠시 미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니셜 D>의 경우는 우리나라 영화인 <건축학개론>에서와 같이 '어떤 오해'로 인해서 여자를 떠나보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해를 풀어보려고 한다든지 하는 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인공이 자발적으로 사랑을 포기하는 인상을 쉽게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언어의 정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상대방도 자신과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도, 그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자신이 정한 길을 묵묵히 걸어나가며 종종 안부를 주고받게 되지요. 그리고 남자 주인공이 이렇게 말합니다. "언젠가 더 멀리 걸어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 (여자를) 만나러 가야겠다"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그녀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전에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에도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어느 정도의 자기 성장을 이룬 사람이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요?


2. 성장 혹은 성공, 그것을 방해하는 사랑이라는 병

요즈음 우리들의 입장에서 자기 성장은 쉽게 말해 '성공'일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그런 감정' 따위에만 집중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적어도 위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언어의 정원> 주인공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성장(성공)'과 '사랑'이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 등에서 사랑은 '병'으로 표현됩니다. 사랑에 빠지면 '상사병'에 걸리게 되고, 평상시에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던 사람이 갑자기 분별을 잃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멀리하려고 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섣불리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요. 그것이 사랑일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다그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어떤 작품 속 주인공의 성격이 흔히 말하는 '남성적'인 경우에 이와 같은 부정이 더 잘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남자 주인공일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여자 주인공이라고 하더라도 야망이 크고, 진취적인 인물일수록 사랑이라는 감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입니다. 최근 <병원선>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역시, 그러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시대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흔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행위는 생산 활동입니다.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내고, 더 많은 업무 성과를 보여주고, 자신의 주변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야말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생산'이라는 것은 주로 남성이 담당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묵묵히 집안일을 맡아서 하고 남성들의 보조 역할을 하는 여성들은 '재생산'의 역할만 할 뿐이라고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적인 영역에서 더 많은 '생산'을 이루어야 하는 남성(남성적인 역할)의 입장에서, 사랑이라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하나의 관습이 되었을 수도 있고 말이지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표면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았고, 여성에게 남성들이 수행하던 역할까지도 강요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더 많은 불평등을 생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과정에서 남성들이 하던 일들을 동등하게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남녀평등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등장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을 통해서 적잖이 목격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사회 전체가 남성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확장과 진보, 생산과 성장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기 성장을 위해서, 자신이 이루어내고자 하는 생산을 위해서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을 유보하거나 거부하기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3. 우리는 한 그루의 나무, 그 중심은 뿌리

나무는 그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결코 줄기를 굵게 유지할 수 없고, 가지를 뻗을 수도 없습니다. 이파리가 싱싱하게 열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꽃을 피울 수도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가지고 성과를 이루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잘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뿌리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자아'이며, 그중에서도 다른 존재에 비해 인간이 고도의 형태로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예전까지만 해도 감정은 합리적·이성적 사고를 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고 해서 최대한 억눌러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감정이 이성적 사고를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이론들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범박하게 말하면, 나의 감정이 안정되고 평화롭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의 두뇌를 완벽하게 사용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말입니다. 화가 난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불안하고 두려운 상태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아무래도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이 아주 잘 이루어진 경우일 것입니다. 혼자서 그러한 마음의 안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365일 내내 심리상담가를 옆에 두고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때로는 이론적으로 상담하는 것보다 그저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때, 대단한 만족감이 가슴 가득 차오르게 되지요.


길고 지루하게 써 왔지만, 결론은 이것입니다. 내가 더욱 성장하고 더욱 많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버리기로 결정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든 가상공간에서든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이상, 타인의 인정이 없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어떤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그로 인해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려동물이나 SNS 인맥을 통해서,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과의 교감을 통해서, 여행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을 통해서 행복한 마음을 얻고는 합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이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수많은 타인들 중에서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지지해주는 단 한 명의 연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 삶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여자 친구', '연인', '아내', 심지어 '썸남썸녀'라도 좋습니다. 그들이 있어서 하루하루 행복하고, 내일을 기다리게 되고, 또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있나요? 바로 그겁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성장할 준비가 끝났고, 심지어 성장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당신의 성장을, 당신의 뿌리 깊은 사랑을 바탕으로 뻗어나갈 줄기와 가지를 응원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공적 삶과 사적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