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그림 책 한 권
최영순 글 김희진 그림, 『목욕 중』
10년 전, 아내에게 선물했던 장 자끄 상뻬의 그림책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는 장 자끄 상뻬다. 이 작가를 손에 꼽은 이유는 내가 마흔이 다 되어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뻬 스스로 글과 그림을 모두 창작한 작품인데, 그의 책에는 글이 부각되어 있다. 그림은 글로써 전개하는 이야기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정도에 그친다. 극단적으로는 그림이 없어도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상뻬의 책은 그림책일까?
인생을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 책이다. 만만찮은 지혜를 선물한다. 물론, 상뻬의 또 다른 책 가운데 『인생은 단순한 균형의 문제』는 완전한 그림책처럼 보인다. 몇몇 페이지는 그림에 글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추억에 관한 주석일 따름이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관련한 그림인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자신의 일생과 관련한 추억이기에 그럴 것이다.
어쨌든, 장 자끄 상뻬의 책은 성인을 위한 책이다. 작가 자신이 자신의 추억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거나,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이 많기 때문이다.
장황하게 설명한 글은 그림책을 어린이의 것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삽화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림책이 아닌 것처럼, 페이지마다 그림이 존재한다고 해도, 구체적인 서술로 책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면, 그것을 그림책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헷갈릴 수 있다.
그림책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주로 부모들이다. 부모라고 말한 이유는 아이들이 스스로 그림책을 읽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부모가 책을 준비해 읽어줘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그림책이 좋아진 아이들이 스스로 그림책을 읽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을 고르고 구매하는 과정 자체는 부모에게 맡겨진다.
그림책을 소비하는 사람이 부모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향유해야 할 독자는 오롯이 아이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부모와 나란히 앉아 마주하는 책에 글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다면, 그 책은 아이들에게서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빨리 넘어가고 싶어 한다. 반면에 부모는 주어진 활자를 모두 읽고자 한다. 이때 책 읽기는 인내의 시간이 되고, 통제하고 당해야 하는 시간이 된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에서 글이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재미있는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다가 빨리 책장을 넘기려고 한다. 재미있는 그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단 글자가 많이 없으니 대충 읽고 넘어가려고 한다. 아이들에게 독서는 일종의 과제처럼 주어지고, 하루에 한 권, 그것을 읽으면 스마트폰이나 TV 시청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최영순 글, 김희진 그림의 『목욕 중』이라는 책을 바라본다. 아들이 좋아하는 파란색 표지에는 짓궂은 표정의 두 남자아이가 있다. 목욕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목욕 중에 경험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다룬 책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글과 그림이 합쳐져 있을 때 오롯이 전달된다. 그림이 빠지면 글은 갈길을 잃고, 글이 없으면 그림은 의미를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최영순과 김희진 가운데 책의 주인을 정하고 싶어졌다. 나는 최영순을 꼽겠다.
아빠가 한 번 더 부르기 전에 팬티를 벗고 욕실로 들어가자 동생이 욕조 안에서 우유를 마시고 있다. 풍덩. 많은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다.
정확한 문장을 옮기지 않았지만, 정확히 이렇게만 내용이 전개된다. 페이지 가득한 그림을 제외하고 문장만 읽었을 때, 최영순의 글은 시가 된다.
불친절한 설명과 장면의 비약이 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볼 때,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여백을 스스로 채워 넣으며 이해하고 느껴야 하는 글은 시가 된다. 욕조 안으로 풍덩 들어가자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던 전개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 비로소 '왜 그랬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림 덕분이다.
시를 접할 때 많은 사람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그 의미를 스스로 파악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시 강의를 하시던 교수님께서 항상 그림을 그리셨던 이유가 그것이다. 함축이 강한 언어, 비약이 있는 행간을 이해하는 데에는 이미지가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시를 지운 그림은 갈 곳을 잃는다. 시를 위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림책에 그려진 그림은 글을 토양 삼아 자라난 숲이다. 토양이 사라지면, 나무는 살 수 없다.
그림을 먼저 그려놓고 글을 붙여 달라고 하는 과정은 소모적이다. 그런 작업을 청탁할 사람이라면 이미 글을 쓸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스토리를 구상한다는 것은 이미 언어로 구성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그림책에 담긴 시 한 편을 감상했다. 재미있는 동시를 감상했다. 거듭 읽어도 그것은 시다. 다만, 이 시인은 책 한 권에 시 한 편을 담았다. 행과 연에 그림을 가득 채워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니, 이 시의 풍성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