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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Dec 04. 2020

민낯을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죄송합니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닙니다.

  언젠가 길게 늘어선 출근 차량 사이를 맹렬히 비집으며 달리는 1톤 트럭을 봤다. 내리막길에서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다. 끊임없는 차선 바꾸기의 운명이 그러하듯, 그도 자신이 선택한 차선이 막혀 속도를 줄이다가 결국 멈추고 말았다. 차선을 유지하며 달리던 내 차가 멈춰 선 트럭 옆을 지나갔다. 트럭 짐칸에는 ‘야생동물퇴치프로그램’이라는 글귀가 인쇄돼 있었다.


  인간은 자신이 고귀한 존재인 듯 착각하며 살아간다. 교양을 쌓고 좋은 취미를 가지고 품위 있는 언행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이유도 자신이 고귀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함인지 모른다. 책을 가까이하고, 거친 말을 사용하지 않으며,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조건이다. 이를 지키지 못하는 인간은 인두겁을 쓴 괴물이 된다.


  ‘야생동물퇴치프로그램’이라는 글귀를 새긴 트럭은 신호가 바뀌고 빈틈이 생기자 곧장 그 틈을 비집으며 나아갔다. 시야에서 사라진 트럭을 발견한 것은 1km 남짓의 교차로. 야생동물처럼 날뛰던 트럭 운전수도 결국 ‘인간’이었다. 신호등과 그 옆에 붙은 단속카메라까지 무시하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법의 사각지대는 곳곳에 존재한다. 카메라 비추지 못하는 곳에서 범죄가 발생한다. 다행스럽게도 카메라가 곳곳에 있고, 목격자도 늘어나고 있어서 완전한 범죄를 저지르기는 불가능하다. 단속카메라에 찍히지 않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행여 누군가가 블랙박스 영상을 첨부하여 난폭운전을 신고할 수도 있으니까.


  ‘인간’이라는 개념에 완전히 동기화된 사람은 법에 저촉될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고,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가족을 아끼며, 스스로를 낮추면서도 소중히 대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불안감이 없을지 모른다. 법을 어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한참을 설명해야 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규칙이 사회가 요구하는 그것과 일치하므로 더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

‘인간’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간혹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고민해야 할 순간도 있다. ‘비인간’이라고 해서 완전히 짐승이 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욕망의 흐름을 주체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를 ‘비인간’이라고 부른다. 실로 인간 문명은 스스로의 욕망을 끊임없이 억누르면서 이룩됐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보면, 인간 문명이 뭇 인간의 욕망을 교활하게 이용하며 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간다움을 강조하는 행위의 바탕에는 인간답지 못한 본능이 도사리고 있다.


  욕망이 없다면 인간 문명이 이토록 지구 전체를 집어삼킬 수 있었을까.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했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미개인’으로 규정하며 내쫓거나 학살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말하는 문명이 과연 가능했을까. 그렇다면 인간의 문명이란 결국 비인간의 문명일 따름이고, 인간의 부끄러운 민낯을 숨기기 위해 그토록 ‘인간다움’을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야생동물퇴치프로그램’이라는 글귀를 새긴 트럭은 그래서 모순적이다.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난폭한 트럭과, 그런 트럭을 보면서 혀를 차지만 사실, 자신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rpm을 끌어올릴 수많은 운전자들. 그리고 그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공사들.


  나는 오늘도 인간인 척하고 살아가느라 힘이 부친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애써 웃음을 짓는다. 집에 돌아가서는 민낯을 가린 인두겁을 내려놓고 싶다. 인두겁 위에 마스크까지 뒤집어쓴 터라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마스크를 벗고 한숨 돌리다가, 인두겁을 잊어버리곤 한다.


  사람이 혼자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이 되어야만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갈 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민낯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건 제1조건이다. 내 마음 속에 잠들어 있는 괴물과 악마, 그리고 짐승을 잘 가두어 두어야 한다. 그들의 성대를 자르고, 성기를 자르고, 우리에 가둔 채 조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민낯이 뛰쳐나와 상대방의 얼굴을 공격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인두겁을 물어뜯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아벨만을 사랑하며, 카인은 거부한다. 설령 그들이 공격당한 부분이 민낯이 아닌 인두겁이었다 한들,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민낯을 목격한 자들도 인두겁을 쓴 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답답한 마스크를 벗다가 행여 실수하지 말라. 당신의 민낯까지 드러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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