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는 열정만으로 살아가기에는...
적정 열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체온이 36.5를 넘어 37도를 훌쩍 넘어서면 병원에 가야 하는 수가 생긴다. 체온이 올라가는 이유가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외부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몸속 전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열이 지나치게 높다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중이므로 도와야 한다. 심지어 부끄러운 일을 당해 얼굴이 빨개지고 더위를 느낀다면, 그 역시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외부의 적에 맞서는 중이다. 그들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가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을 최소화해야 한다.
너도나도 열정을 강요하는 요즘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더 뜨거워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서 뜨거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편안히 살아가지 않을까? 열정의 중요성을 말하는 사람은 이미 어떤 식으로든 이 엄혹한 세상과 싸워 이긴 사람일 테니 말이다.
자신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체온이 올라가는 것이라면, 열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시대는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적정한 온도를 유지하면서는 도저히 생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 체온을 올려야 하는 상황. 뜨거운 열정이 없는 사람은 외부 세계에 맞서지 않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상황.
물론, 열정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열정이 강요되는 상황이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강요된 열정에는 외부 세계의 변화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으리라는 충고가 들어 있다.
어쩌면 "네 바깥세상이 어떻든 그것을 극복해 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라. 만약 네가 패배한다면 그건 결국 너의 체온(열정)이 충분히 뜨겁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냉정한 발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무섭도록 올라간 체온이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걸. 끊임없이 타오르는 열정으로는 행복한 삶, 만족스러운 삶에 다다를 수 없음을 말이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쉬어. 네 바깥세상도 고요해졌으니 말이야."라는 말과 함께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네주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발자국조차 남지 않는 넓은 사막을 뜨거운 열정만으로 건널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