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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Nov 09. 2017

수신확인을 한 사람은 나 혹은 당신.

성기완의 <당신의 텍스트 6-수신확인>을 읽는 두 가지 방법

오랜만에 성기완 시인의 시를 읽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제 생각을 하며 빌렸다는 진은영 시인의 <시시하다>라는 책에서 오랜만에 읽게 되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 시창작 모임에서 한 선배가 이 시를 보여 주었을 때에는 신선하고 파격적인 시로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충격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파격은 이제 어느 정도 보편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라는 생각은 여전히 드는 것 같습니다. 아래의 시는 <당신의 텍스트>라는 연작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당신의 텍스트 6-수신확인> 입니다. 한 번 보시죠.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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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확인 2007-10-26 13:50

헤어졌습니다
-성기완, <당신의 텍스트 6-수신확인>


위의 시에 언급된 2007년이라는 시기에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어서 메신저 앱을 쓸 수도 없었고, 휴대전화 메시지를 '읽음/읽지 않음' 표시로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이메일을 보내면 수신확인을 할 수 있었는데,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면 상대방이 읽었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으면 결국 전화를 걸거나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읽음/읽지않음' 표시가 있어서, 읽었는데도 답장을 하지 않거나, 읽었는데 한참 뒤에 답장하는 것을 가지고 의심을 하거나 다툼을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겪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메일이건 메신저건 수신확인 서비스라는 게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인용한 성기완 시인의 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시의 화자는 이메일로 이별을 말한 것일까요? 단숨에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은 역시 화자가 상대방(당신)에게 헤어지자는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메일을 보내고서 보낸 메일함 수신확인을 어지간히 한 모양입니다. 무려 12번이나 확인을 한 끝에, 상대방이 자신의 이메일을 읽은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야기합니다. 헤어졌다고 말이죠. 제가 오랜만에 이 시를 읽게 된 것이 진은영 시인의 책이라고 했으니, 진은영 시인의 생각을 먼저 보려고 합니다. 진은영 시인은 <시시하다>라는 책에서 이 시의 화자가 '당신'에게 이별을 선언하는 메일을 보낸 후에 당신의 답장을 기다렸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알겠다는 대답도, 헤어지고 싶지 않으니 한 번 더 생각해 달라는 말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진은영 시인은 애초에는 결별을 선언한 내가 나쁜 사람이었지만, 끝에는 나의 결별선언을 아무런 반박없이 매정하게 받아들인 당신이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리는 역전을 읽어 냅니다. 과연 시인답게 재미있게 잘 읽어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시의 내용에 홀려 놓치기 쉬운 흥미로운 것은 이 시의 제목이 <당신의 텍스트 6-수신확인>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작성한 텍스트(이메일)가 아닌, 당신이 작성한 텍스트(이메일)를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일 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당신은 나에게 헤어지자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나는 받은 메일함에 당신의 텍스트(이메일)가 도착한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을 클릭하여 읽어볼까 하다가 망설이게 됩니다. 사실 당신의 텍스트가 오기 전부터 우리 둘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몇 번이나 더 망설입니다. 읽을까 말까. 무려 열 두 번을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깨닫습니다. 당신의 텍스트를 읽어보든 읽어보지 않든 어차피 당신의 마음은 나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결국 체념하고 클릭합니다. 2007년 10월 26일 오후 1시 50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역시 당신의 텍스트에는 간결한 이별 통보가 적혀 있었고, 나는 그것을 읽음으로써 당신의 마음이 나에게 전달되었다는 '수신확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답장을 할 필요는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고요?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들어 보십시오. 그럼 아마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내가 보낸 이메일을 당신이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를 계속 확인하다가 결국 당신이 읽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내용과, 당신이 어떤 말을 썼을지 뻔히 아는 이메일을 차마 읽어보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겨우 수신확인을 하게 되는 내용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여운이 남나요? 취향의 차이이고, 개인이 이 시를 읽는 상황의 차이이기 때문에 중요한 선택은 아닙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름 국문학자로서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떤 것이 되었든 시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죠.


여담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저 시의 화자처럼 이메일을 주고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메신저의 '1'이 사라졌는지 아닌지를 계속 확인하면서 마음을 졸이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이 있겠죠.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이 누군가와 사랑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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