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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Oct 18. 2021

거북이가 맛보는 성취감을 상상하며

꼴찌가 아닌 GOAL-찌를 꿈꾸며

https://youtu.be/UiPQoG7YNzk


꼴찌를 위하여라는 노래는 초등학교 때 들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개똥벌레"나 "작은 연못" 같은 노래를 담임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는 했다.


일등을 하느라 뛰어가는 친구들에게 주변도 둘러보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는 꼴찌가 되자고 말한다. 이 노래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2021년 지금도 속도경쟁이라는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라든지 개미와 짱이 이야기는 게으름이나 자만심, 나태함이 가져다주는 좌절을 보여준다. 근면 성실한 인간상을 강조하는 것이 국가 발전에 유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토끼와 베짱이가 잘못한 것은 없다는 반론이 쏟아져 나오고, 초등학교 교육에서도 동화의 결말을 새롭게 해석하는 과업이 존재한다. 그런 것을 볼 때 이 우화가 현대 사회에도 얼마나 효용을 지닐지는 의심스럽다.


기왕 달리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을 생각해 보고 싶다. 토끼와 거북이는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렸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토끼는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의 깃발을 보고 달렸지만, 거북이는 자신의 코앞을 쳐다보며 기는 것만 가능했기 때문이겠다.


토끼가 자만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깃발과 자신의 간격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인 깃발에 가까워지니 자연스레 나태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거북이는 자신의 목표가 당장의 몇 센티미터나 몇 미터였다. 그래서 그 목표를 이루면 다음 목표가 되는 거리만큼을 또 이동했다. 거북이는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자신의 속도보다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이다.

토끼는 거북이보다 빨랐지만, 한 달음에 깃발까지 갈 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니 토끼도 자신의 보폭을 느끼면서 껑충껑충 뛰어 나갔다면, 훨씬 더 긴장하며 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현실을 즐기라는 말이 베짱이처럼 그저 놀기만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확하게는 베짱이처럼 현실 혹은 현재 속에 목표를 세우라는 말일 듯하다. 언덕 위의 깃발이라는 먼 목표를 바라보며 달리는 사람들은 1등이 되기 위해 아주 빨리 달려야 한다. 그래서 나태해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저 멀리 목표를 설정해 두면 지치고 만다. 너무 멀어서 아무리 달려도 숨만 가쁠 뿐 가까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거북이는 그렇지 않다. 엉금엉금 조금씩 나아감으로써 센티미터만큼의 전진을 목표로 한다. 그러니 언제나 목표는 가깝고 성취감은 쌓여간다. 짱이의 비웃음을 이겨내고 겨울을 대비한 개미가 정말 겨울을 대비하면서 일했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개미는 개미구멍으로 음식을 하나하나 날라서 쌓는 행위 자체를 목표로 삼고 그것을 이룰 때마다 성취감도 쌓았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저 먼 미래를 생각하면서 일했다면, 베짱이와 똑같이 겨울은 아직 한참 멀었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가거나 지쳐버렸을 테니까 말이다.


니체는 안티 크리스트에서 기독교와 불교 모두를 허무주의로 보았다. 특히 크리스트교는 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록 함으로써 현실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시켰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니체 말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꺼내어 볼 때, 우리는 삶의 목표를 내 발치에 두라는 교훈을 얻는다. 놀면서 현재를 보내라는 말이 아닌, 저 에덴동산에 꽂힌 구원의 깃발을 바라보는 대신, 내 앞에 주어진 하루, 반나절, 한 시간, 십분 앞의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는 즐거움을 맛보라는 교훈 말이다.


오늘도 달리고 있지만 꼴찌인 많은 거북이들에게, 당신은 언덕 위 깃발을 기준으로만 꼴찌일 뿐, 눈앞에 있는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GOAL-찌"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서 '찌'는 낚시할 때 쓰는 도구다. 찌가 있어서 내가 낚싯줄을 드리운 지점을 정확히 기억할 수 있다. 당신이 그런 찌를 드리우기를 바란다. 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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