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다독이며
정자 바다는 긴 허리를 뉘고 있다
몽돌이 입 모아 쏟아내는 노래
어느새 갈매기는 한 몸이 되었다
소라도 고둥도 해삼도 파도를 펼치고 앉아
시 한 자락 읊고 있다
늘 곁에 있어 준 오랜 그대와
흰 거품 얹은 바닷바람 마음껏 들이킨다
꼭꼭 숨겨둔 구름 같은 이야기
몽돌 몽돌 부서지고 있다
몽돌해변이 펼쳐진 정자 바다는 여러 시인이 다루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두세 편 소개해 드린 적이 있고요, 지금도 많은 시인이 정자 바다를 다녀와서 시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첫 줄에 나와 있듯, 정자 바다가 세월을 다독이는 바다처럼 보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몽돌’은 정자해변을 세월을 다독이는 곳, 시간의 향기를 머금은 곳으로 만드는 듯합니다. 향기로운 시간은 인내로 탄생합니다. 몽돌은 파도에 조각 난 돌멩이가 아니라, 파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존재입니다.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사교성이 좋은 사람처럼, 파도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을 변형시키죠. 몽돌은 돌멩이이지만, 바다와 하나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밀려드는 파도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파도의 거친 표현을 이해하고, 그를 닮아 둥글게 변해버린 몽돌의 노래는 그 자체로 화합의 노래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자해변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몽돌의 노랫소리에 맞춰 시를 읊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몽돌밭 화음이 펼쳐집니다.
늘 자신의 곁에 있어준 그대와 정자 해변에 있는 모습은 예전에 소개해 드린 최일성의 「주전에서」라는 시와 닮아 보입니다. ‘주전’이라는 장소와 남편이 아내에게 화해를 청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가 해변을 찾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월을 다독이며, 파도를 닮아간 몽돌이 가득한 정자해변에서 위로를 받거나 반성을 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시인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흰 거품 얹은 바닷바람 마음껏 들이킨다”라는 구절에서 맥주가 떠오릅니다. 흰 거품 얹은 바닷바람이 카푸치노 같은 커피라면 상쾌함이 전해지지 않으리라 생각하기에 맥주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지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들이키는 맥주는 답답한 마음도 시원하게 만들어줍니다. 시인은 정자 바다의 시원한 바람을 들이마시면서 꼭꼭 숨겨둔 구름 같은 이야기를 몽돌 몽돌 부수고 있습니다. 구름 같은 이야기는 말 그대로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놀림을 받을 수 있는 꿈이나 소망이겠지요? 늘 내 곁에 있어준 그대에게도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정자 바다를 바라보며 삭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시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내 맘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살다 보면 자기만의 색깔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면서도 누군가를 따라가지 않으면 불안해집니다. ‘몽돌’을 바라보면 그런 느낌이 듭니다. 자신만의 삶을 사는 일과 다른 사람의 삶을 따르는 일에 큰 차이가 있을까? 시인은 마음속에 있는 구름 같은 이야기가 몽돌 몽돌 부서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인의 꿈은 산산조각 난 게 아닙니다. 그 모양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자신만의 꿈이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내 곁에서 늘 함께해 준 사람의 영향으로 나의 꿈도 바뀌는 것 같습니다. 그 꿈이 내 것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단한 내 마음속 바위가 몽돌처럼 펼쳐지는 경험이 바로 사랑일 테니까요. 그래서 정자 몽돌해변은 화음의 바다인 것 같습니다.
*이 글은 2022년 1월 17일 <라디오 세상 울산만사>의 '인문학 소풍 그대와 함께' 코너에서 소개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