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하 시인의 슬도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박산하 시인은 예전에 태화강 십리대숲을 소재로 한 「초록비」라는 시로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시는 지난주에 소개해 드린 김종원 시인의 「슬도에서」와 제목이 똑같습니다. 두 시인이 같은 장소에 관한 시를 썼는데, 시에 담긴 슬도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김종원의 슬도에서는 이 링크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mrj7b1u/627).
거문고를 뜯는 소리라니
항아리 닮은 포구에서
곰보바위 속에 차있던 물이
목구멍 사이로 빠져나올 때
그 울림이 거문고 소리로 들린다는데
내 귀에는 거문고 소리 들리지 않는다
해당화 돈나무가 꽃을 피운 슬도 입구
풀들은 휘어지다 다시 서고
바위틈에 굽을 대로 굽은 해송 한 그루
바다를 빤히 본다
물이 빠져나가는 소리, 한 방울 한 방울
때론 빠르고 격하게
때론 느리고 보드라운
바다가 게워낸 울음 속에는
으스러지는 빙하의 울음
소화 못 한 고래의 눈물
물질하는 해녀의 숨소리
선박을 만드는 노동의 땀이
곰보바위 속에 잠시 머물다
빠져나갈 뿐이다
시의 앞부분에서는 슬도에서 들리는 바닷소리가 거문고 소리와 같다는 이야기를 확인하고자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거문고 뜯는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김종원 시인이 울음소리의 정체를 찾으려고 해도 도무지 누구의 울음인지 알지 못했던 것과도 비슷한 모습입니다. 두 시인 모두 슬도를 찾았을 때 들리는 소리를 시의 첫머리에 그려 넣고 있다는 점이 비슷합니다.
뒷부분의 내용은 자신이 접한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김종원 시인의 「슬도에서」와 비슷한 구조로 보입니다. 김종원 시인이 그 소리를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의 할머니 한숨 소리와 연결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시인 개인의 경험을 시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반대로 박산하 시인은 슬도의 바닷소리를 사회적인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두 시인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슬도에서 들리는 바닷소리를 사회적인 영역으로 확장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것이 정치적인 영역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으스러지는 빙하의 울음”이나 “소화 못 한 고래의 눈물”은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으로 고통을 겪는 지구와 생명체들에 맞닿아 있습니다. 빙하가 녹아 살 곳을 잃는 극지방 동물들과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을 잔뜩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고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뒤에 물질하는 해녀와 선박을 만드는 근로자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해녀에 관한 시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해녀’는 목숨을 걸고 물질을 합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바다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해녀는 울산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해녀들의 삶은 험한 바다에 맞서야 하므로 녹록하지 않다고 봅니다. 울산의 대형 조선소는 울산의 산업 동력이자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발전의 상징입니다. 조선소에서 완성한 선박은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대한민국의 이름이 넓은 바다 건너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에는 위험한 현장에서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작업을 하는 근로자분들이 있습니다.(이 원고를 작성하던 10월 당시, 울산 조선소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안전성이 매우 취약함을 보도했다. 사측에서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한 경우는 없었다는 내용도 덧붙었다.)
박산하 시인이 슬도에서 거문고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원 시인이 그러했듯이, 바다를 찾는 이의 마음에 따라 바닷소리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테니까요. 박산하 시인은 슬도를 찾고 그곳에서 추억을 쌓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이면에 감춰진 존재들의 모습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슬도를 찾을 때마다 그런 존재들을 떠올리며 숙연해져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삶이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땀과 눈물에 빚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가끔 떠올리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2021년 10월 11일에 울산 KBS <라디오세상 울산만사>의 '인문학 소풍 그대와 함께' 코너에서 소개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