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슬도에서」

슬도가 끝이면서도 따뜻한 곳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by 정선생
누군가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면 항으로 달려오는 갯바람
온몸으로 안으며 갈매기
몇 마리 한가로이 멍 때리고 있는 듯도 하고
바다 속을 째려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림자만 무표정하게 뒤따라올 뿐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파도소리인 듯 바람소리인 듯
누군가의 울음소리 들린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숨이 차 얼굴마저 창백해지시던 그 날의
아버지 목소리 같기도 하고
아들의 얼굴 쓰다듬어 주지도 못하고
영영 이별을 해야 했던 할머니의 한숨 소리
어린 날 잠결에 들었던 그
가슴 철렁 내려앉던
한숨 소리 같기도 한
울음 소리 들린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 갈 때마다
하얗게 부서지는 누군가의 삶이
우두커니 서 있다.

김종원 시인의 「슬도에서」라는 시는 만나 보려고 합니다. 1960년에 울산에서 출생한 분이시고, 86년에 등단하셨습니다. 시집 『흐르는 것도 아름답다』, 『새벽, 7번 국도를 따라가자』, 『다시 새벽이 오면』, 『길 위에 누워 자는 길』이 있습니다. 이 시는 『길 위에 누워 자는 길』에 수록된 시입니다.

사진: Kimjeongsoon

슬도는 예전에 <메이퀸>이라는 드라마 촬영 장소로 더욱 유명해진 장소입니다. 지금도 울산에서 가볼만한 곳을 꼽을 때 이곳 ‘슬도’가 빠지지 않습니다. 슬도는 긴 방파제로 마을과 연결되어 있고 등대가 있습니다. 하얀색 고래 상징물도 보실 수 있죠. 방파제 주변으로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가득 보이는 때도 있습니다. 낚시를 즐기는 분들도 많이 보이고요. 물론, 가장 핵심은 등대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바다 경치일 것 같습니다. 함께 일하는 교수께서는 아들과 일상을 벗어나고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을 때 슬도를 찾으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답답함을 날려주는 멋진 장소인 듯합니다.


슬도에서 볼 수 있는 활기찬 분위기와 다르게 시인은 조금 어두워 보입니다. 물론, 슬도를 찾는 분들의 마음이 언제나 밝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 입장에서는 홀로 선 등대가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방문객이 많았을 낮 시간에 등대가 그토록 외로워 보일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군중 속의 고독 같은 것이었을까요?) 그럼에도 시인은 등대에서 알 수 없는 울음소리를 듣고, 그 울음소리의 주인을 찾고 있는 듯합니다.


시인은 슬도 바다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로 자신의 어린 시절 ‘그 날’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날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지도 못한 할머니와 잠결에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어렴풋이 접했던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아버지의 곁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한스러운 마음까지 담아내고 있는 듯합니다. 동시에 할머님의 죽음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할머니께서 눈을 감기 전에 아버지가 임종 소식을 듣고 숨가쁘게 달려오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버지의 얼굴 한 번 쓰다듬지 못하고 눈을 감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시인의 생애를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정확히 어떤 기억인지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순간이 되었든, 시인의 마음에 자리 잡은 슬픔이 슬도를 바라보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시인은 “하얗게 부서지는 누군가의 삶이 우두커니 서 있다”라고 말하는 구절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흔히 인생을 거친 바다에 비유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파도에 하얗게 부서지는 삶이란 우리 모두의 삶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 말하는 우두커니 선 누군가의 모습이란 시인 자신의 기억에 자리 잡은 아버지 혹은 할머니일 것입니다. 만약 등대가 그분들이 돌아가신 후의 시인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비극적일 듯합니다. 오히려 생전에 모든 인생의 고초를 묵묵히 견뎌내시던 아버지와 할머니의 강하지만 쓸쓸한 모습을, 파도를 마주하고 있는 슬도의 등대와 연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해 보입니다. 시인은 그날의 기억을 용기의 양분으로 삼아 삶을 이겨내고 있는 듯합니다.


이번 시를 준비하면서 다른 선생님께 슬도에 방문하셨을 때의 느낌을 여쭸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은 다르셨지만, 공통된 말씀이 “슬도는 육지가 끝나는 지점이지만 따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다가, 그곳이 ‘무한한 시작을 품은 끝’이기 때문일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슬도’는 분명 망망대해를 마주하고 있는 울산 방어진 중에서도 끄트머리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 육지의 끝에서 우리는 일상의 파도와 다시 부딪혀 싸울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슬도는 그렇게 끝이면서도 따뜻한 장소이기에, 울산 시민은 물론이고 울산을 찾는 많은 분들이 찾아가는 장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쓸쓸함과 아픔을 드러낸 듯하지만, 우두커니 서 있는 등대를 보고 다시 힘을 내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렇게 믿고 싶어 집니다.


*이 글은 울산 KBS 라디오 <라디오 세상 울산 만사>, 인문학 소풍 그대와 함께에서 10월 4일에 소개한 내용을 다듬은 것입니다.

*이 원고를 작성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keyword
이전 06화손택수의 「방어진 해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