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으로 가면 말 없는 말들과 답 없는 답들과 물物 없는 물들이 가득하다. 나는 나와 마주 앉아 대화하고, 답을 비우고 욕심을 새로 갖춘다. 세월에 닦인 몽돌엔 음색 없는 음이 나고 화색 없는 색이 돋고 채색 없는 빛이 난다.
몽돌해변을 돌아 나오면 세상엔 바다 냄새가 돌고 사람들은 은빛 지느러미로 물놀이한다. 나는 이 바다의 바다가 되고 싶다.
시인은 몽돌해변에서 굉장히 철학적인 생각에 잠긴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찾은 해변에서 시인은 혼자이었거나 동행이 있었지만 자신에게 몰입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1연에는 모순적인 말들이 가득합니다. ‘말 없는 말’, ‘답 없는 답’, ‘물物 없는 물’, ‘화색 없는 색’, ‘채색 없는 빛’이 그렇습니다. 이런 말들이 산문형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속도감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순적인 표현들이 몽돌해변에서는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청취자께서도 지난주에 읽었던 「몽돌밭 화음」을 기억하신다면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물은 일정한 형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곳에나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물 없는 물’이라는 표현에서 앞의 물(物)은 물체를 의미하는 한자입니다. 이런 표현을 통해 육지와 바다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장자 철학에서는 수영을 잘하려면 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죠. 육지에서의 삶은 모든 것이 단단하게 형태를 유지해야만 하죠. 온몸에 힘을 빼고 있다가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유연하고 경계가 없는 바다에서 몸을 뻣뻣하게 유지한다면 수영을 할 수도 없고 결국 깊이 빠지고 말 것입니다.
시인은 답을 비우고 욕심을 새로 채운다고 했는데요, 새로운 욕심은 바다를 닮고 싶다는 마음일 것 같습니다. ‘음색 없는 음’이나 ‘채색 없는 빛’은 우리가 강조하는 ‘개성’에서 탈피하는 것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몽돌은 파도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깎이다가 결국에는 둥글둥글한 모습이 됐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와 색깔을 가지려고 애쓰는데, 그럴수록 다채로운 모습을 가질 수 없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나와 다른 것은 배제하게 될 테니까요.
2013년 즈음에 한 시계 회사에서 광고를 낸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사람들의 일상에 바다 생물들이 들어오는 콘셉트였습니다(https://youtu.be/t7 tkY64 MsQs). 그 광고 영상에도 일상에 지친 사람의 표정이 나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 생물들이 유유히 지나가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습니다. 분명 바닷물이 없는데도, 빌딩 사이를 헤엄쳐 나가고 하늘을 유영합니다. 이미희 시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헤엄치듯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 같습니다. 몽돌해변을 다녀온 사람들이 몽돌처럼 바다에 몸을 맡긴 채 말이죠.
겨울철이면 건조한 날씨에 울산 도심이 쓸쓸한 느낌입니다.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닫아놓은 창문과 잘 여민 옷차림도 여유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지요. 태화강과 동해가 있지만, 도심까지 그 기운이 제대로 전달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강변을 거닐거나 바닷가에 앉아 멍하게 앉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게 쉽지만도 않고요. 이미희 시인은 물론이고 울산의 많은 시인이 바다를 찾아가서 시상을 얻는다는 건 울산 바다가 지닌 치유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건조한 겨울철, 마음마저 지치고 힘들 때 자주는 못 가더라도 정자 바다의 몽돌해변을 찾아가시면 분명 피로가 풀리고 힘이 나실 것 같습니다.
*이 글은 2022년 1월 24일 <라디오 세상 울산만사>의 '인문학 소풍 그대와 함께' 코너에서 소개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