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摸함을 추구하기
‘같이’의 가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두 ‘함께’의 ‘가치’를 실현하자는 뜻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동행의 의미로 읽힐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이종범의 글에서도 이와 같은 고민이 느껴진다. https://brunch.co.kr/@k-jlee/4).
‘같이’는 ‘같다’의 부사형이다. 사전에는 “서로 함께”, “서로 다름이 없이”라는 두 의미를 선두에 내세운다. 그래서 ‘같이’라는 말에는 ‘동일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반대로 함께는 “한데 어울리거나 더불어. 또는, (둘 이상의 대상이) 한데 어울리거나 더불어”라는 의미만을 가진다. 다름이 없다는 뜻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같이’를 ‘함께’ 혹은 ‘더불어’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따지자면 엄연히 다른 말이다.
‘같-’이라는 어간을 부사형으로 만들 때에는 ‘–이’와 ‘–게’를 이용할 수 있다. ‘같이’와 같게 모두가 부사형이다. 그러나 의미는 달라진다. 같이는 100% 동일성을 지향하지 않는 대신, 같게는 100%의 지향성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뉘앙스의 차이다. 빨리 와라는 말이 단순한 재촉이라면, 빠르게 와라는 말은 실제로 요구하는 속도가 존재하는 명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다’라는 속성을 공유함은 분명하다. ‘같이’나 ‘같게’도 결국 ‘같다’라는 의미를 공유한다.
동행(同行)은 한자어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 따라 의미도 달라진다. 어딘가를 간다는 행동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가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 한자어 동이 함께와 같이 두 의미로 갈라질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동행은 머물러 있지 않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행위를 공유하는 것일 테다. 우리가 함께 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목적지를 강요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함께 걸어가던 사람은 언제든 멈출 수 있고, 또 다른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그렇기에 때로는 벗과 함께 때로는 혼자 걸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에야, 진짜 함께 가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은 나타나지 않거나, 중간에 멈추거나 다른 곳으로 갈 때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는 나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같은 방식으로 걸어갈 것을 약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 같이 살자”라는 프러포즈로 배우자를 얻은 사람은 배우자의 일탈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일탈인지조차 의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생각(가치관의 차이), 다른 주머니(경제적 자유)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함께 살자”라는 프러포즈로 배우자를 얻은 사람이라면, 배우자의 생각과 주머니를 인정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같이 가기를 원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그들과 같이 집을 구하고, 그들과 같이 소비를 한다. 그들과 같이 교육받기를 원하고 그들과 같이 누리기를 원한다. 그것이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에서 비롯한다면 자신을 위해서는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같아지려고 발버둥 칠수록 우리가 원하는 그들의 삶만 윤택해질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걸어가고, 우리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들과 같이 살아갈 필요는 없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