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선생 Dec 06. 2022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아니야, 우린 모두 함께 사는 사람이야.

아내와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연애할 때니까, 8년 즘 전이었을까? 아내와 순댓국을 먹으며 교육관을 놓고 다투었던 적이 있었다. 제법 심각했던 모양인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대략 그때 상황은 기억난다. 정색을 하면서 언성을 높였던 것 같다. 내 고집을 네가 뭔데 꺾으려고 드느냐고 으르렁댔던 게다(개다!).


참, 지금이나 그때나 성격이 좋지 않다(아마, 앞으로도?)


아내는 내가 박사과정 중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이었는데, 졸업 논문 스터디로 만났다. 나는 아내를 지도 교수님과의 회식 자리에서 처음 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교수님의 시험 감독을 도와드리러 갔을 때, 굉장히 도도하게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가던 멋진 여인이, 스터디를 하고 있는 이 여성과 동일인임을 나중에 알았다. 그것도 아내가 말해 줘서 말이다(내가 아내를 기억하는 것과 달리, 나는 상당히 볼품없었단다). 아무튼, 나는 아내를 포함한 세 명의 여인에게, 졸업하면 더 이상 인연 맺을 일 없는 사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래 놓고, 나는 그 '멋진 여인'과 2015년 겨울, 결혼했다.


당시 순댓국집에서 싸웠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선생과 학생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제였다. 나는 어차피 공부 안 하는 학생은 자기 책임이니까, 굳이 마음을 쏟으며 이끌어갈 필요가 없다고 소리 높였다. 또 강의실 벗어나면 관계없는 남이니까, 이름 따위 잘 외우지도 못하지만 일부러 외우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아내는 나의 강경한 말을 듣고, 그런 것은 선생의 덕목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 같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난폭했고, 생각과 말투도 매우 거칠었다. 다른 사람과 나의 생각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인정하지 않지만, 적어도 인정하는 척이라도 해 보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2022년 현재, 나의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란다. 순댓국집에서 봤던 나의 모습을 언급하면서, 학생들 이름 같은 건 외울 필요가 없다고 했던 정용호가 지금은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고, 졸업한 후에도 안부를 묻는 그런 선생님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마, 아내가 보기에, 지금의 내 모습이 진짜 선생처럼 보이는 것 같다.


인간관계는 참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맞지 않은 여러 피를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O형은 누구에게나 피를 나눠줄 수 있지만, O형이 아닌 피를 받을 수는 없다. 비단 생물학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나의 개성(개 같은 성격?)과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 없다고 믿었다.


거칠게 관계를 맺어나가는 나의 닫힌 마음을 열어 준 것은 아내였다. 아내 덕분에 나는 예전보다 마음을 활짝 열고 사는 것이다. 물론, 나의 의지가 부족했기에 아내는 손가락도 많이 찧었다. 내 마음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손을 밀어 넣고 버텼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은, 내가 아픔을 인정했기에 조금은 나아졌지만 말이다.


2022년 12월 6일. 한 재학생이 우연히 나의 글을 읽었노라, 그리고 나의 글을 좋아하노라 말했다. 큰 감동이다. 부족한 사람의 글을 충분하다고 느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언제나 감사한 일이다. 더군다나, 나를 지지해주는 아내나 가족이 아닌, 잠깐씩 나누는 인사가 전부인 인연일 때는 더욱 그렇다.


물론, 여전히 나는 나, 너는 너다. 그렇지만 나와 너는 모두, 그렇게 사람이다. 나의 O형은 A와 B를 품는 O형이고 싶다. 진짜 ABO형이 되고 싶다. 그들이 자신의 온전한 삶을 이루리라 믿고 싶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삶이 행복해지리라 믿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자의 능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