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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Sep 28. 2022

환자의 능력

  벌써 1년 하고도 9개월이 된 것 같다. 처음 정신과 전문의를 마주하여 어떻게 오셨느냐는 질문에 담담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던 순간, 검사지를 들고 돌아와 500개의 항목에 답을 하고, 물음에 답을 쓰고, 그것을 들고 다음 날 병원에 방문하였던 기억이,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으로 또렷하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 자신에 관한 변화라면 헐크로 완전한 변신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 말고는 없는 듯하다. 나는 여전히 기질적으로 화가 많고, 쉽게 우울하며, 열등감을 느끼며 나 자신을 책망하고 있으니 말이다. 길었던 손톱도 다시 짧아지고 있다. 그나마 오른손은 무사하다고 해야 하나.


  병원에도 변화가 있었다. 주치의는 개인 사정으로 휴원을 했다가, 병원은 다시 열었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를 대신해 다른 의사가 와서 진료를 봐주고 있다. 어느 영화에 나올 법한 광적인 박사 같은 느낌을 풍기는 그는, 제법 냉정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진료하고 있다. 내 안에 있는 폭력성이 다시 올라오는 듯하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코로나와 함께 우울증 치료를 시작했으니 외부와의 관계가 많지 않아서 차도가 있다고 느꼈지만, 이제 대면활동이 늘어나면서 다시 인간관계 속에서 여러 감정들이 밀려 들어와 화를 북돋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나의 직업을 물었고, 나는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고만 말했다. 


  그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니 잘 아시겠지만이라고 말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프로이트와 융을 인용하며, 인간의 마음 구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당신이 먹고 있는 이 작은 약은 당신 스스로가 인간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본래 주치의와는 조금 다른 말이었다. 본래 주치의는 당신의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약을 먹으며 쉽게 이겨내고 편하게 생활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나는 이 의사가 학자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인문학적 지식을 강의하고 있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안 될 학생 같았다. 


  그의 말은 옳았다. 맞는 말이다. 학교에서 가졌던 상담법 세미나에서는 인간관계는 결국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했고, 그 이익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좋은 세계의 모습을 이루는 데 유익한 관계를 취사선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주는 만큼 받는 교환이 일어난다고 한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고 느끼는 경우는 대체로 내가 그들을 싫어하기 때문에(그들에게 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돌아오는 결과(그들도 나에게 주지 않는다)라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게 되고, 그래서 싫어할 만한 이유를 찾으며 거리를 두다 보면, 상대방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당신을 너무 당연하게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반응을 증거로 “그것 봐,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잖아?”라고 결론을 내린단다. 


  사람들은 자신이 설정한 좋은 세계와 어긋나는 모든 반응을 향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좋은 세계를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다면 실패에 관한 기억만이 저장된다. 그런 경험들이 결국 우울증으로 나타나고, 폭언과 폭력으로 공격하기도 한단다. 그리고 남자들이 대체로 후자로 표출한다고 들었다. 물론, 그 뿌리는 동일하다. 내가 원하는 좋은 세계를 성취한 경험이 부재하거나 매우 적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화를 느낀다. 누군가의 비판을 쉽게 비난으로 바꿔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리고 칭찬을 칭찬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한다. 스님도 많은 상담가와 의사도, 그건 모두 당신이 선택한 행동이라고 한다. 그러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우울한 사람이 모두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성격은 바뀌지 않지만, 삶은 바뀌지 않지만, 말과 행동은 바꿀 수 있잖아요. 말과 행동을 바꾸면 당신의 삶도 달라질 거예요”라고. 만약, 바꿀 수 없다면, 당신의 노력이 부족했던 거라고. 열등감과 우울,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 폭력(증상)들이 모두 선택이라고 말한다면, 진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환자조차도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진정한 능력주의 시대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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