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고양[高揚]
박가화의 「나는 도도한 고양이이니까」를 읽고
‘수필’은 ‘소설’과 ‘시’에 비해 대단하지 않은 듯 여기고는 한다. 그럼에도 쉽게 쓸 수 없는 글, 그러나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실제로 수필에 관한 사전적 정의는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이다(표준국어대사전). 그 애매성이 수필을 쉽게 즐기지 못하는 이유일까?
그러나 훨씬 솔직한 원인은,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경험보다는 ‘특별한 사람’의 경험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듯하다. 그래서 수필가의 진지한 책 보다 유명 연예인이 ‘수필집’ 혹은 ‘에세이집’이라는 책을 내놓으면 불티나게 팔리고, 출판사도 그걸 알기에 ‘그런 에세이(수필)’를 전략적으로 선호하는 듯하고 말이다.
어쨌든, 수필이라면 피천득의 「인연」이나 법정의 「무소유」밖에 모르는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겠으나, 적어도 수필은 ‘작가=화자’라는 공식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2022년 11월 울산수필가협회에서 낸 『수필』 제23집에는 낯선 작품 하나가 있다. 박가화의 「나는 도도한 고양이이니까」이다.
박가화의 「나는 도도한 고양이이니까」에서는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고양이는 자신을 박대하다가 환대하는 인간의 모순된 행동에 환멸을 느끼는 듯하다. 도도하게 인간의 환대를 거부하겠다는 다짐도 잠시, ‘배고픔’이라는 생의 절실한 욕구 앞에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보며 씁쓸히 뇌까린다.
“눈을 뜨고 있지만 제대로 볼 때와 보지 못할 때가 이리도 다르다니….”
울산수필가협회 회장으로 있는 고은희 수필가는 “수필이 문학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는데도 크게 주목 받거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발간사, 『수필』 4면.) 나의 얕은 지식으로 그 이유를 짐작해 볼 때, 수필은 첫째 ‘자기 이야기(사실)’라는 점, 둘째 ‘형식이 복잡하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듯싶다.
‘자기 이야기’는 ‘소설’과 ‘시’, ‘수필’ 모두에 훌륭한 자산이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중에서 자기 이야기를 기록한 메모장이나 일기장이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소설가의 초기 작품은 자전적 요소를 띠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수필과 상당히 겹친다고 볼 수 있다. 시인의 습작기에도 자기, 혹은 자기 주변과 일상에서 시상을 길어낸다. 다만, 시와 소설은 그것을 화자(주인공), 시점, 플롯과 연·행 따위로 재구성하는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가는 듯 보인다.
반면 수필은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비교적 평이하게 보여주고 경험에서 길어낸 깨달음을 대중에게 전달한다고 여긴다. ‘소설’과 ‘수필’은 ‘잽’과 ‘스트레이트’처럼 다르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그것이 짜 놓은 미로를 통과하면서 잽을 얻어맞으며 천천히 무너져 내리지만, 수필은 별다른 공격이 없다가 갑자기 큰 한방을 선사하고는 한다.
그런데, 이런 거친 비교는 모두 수필에서 ‘작가=화자’라는 공식이 불변할 때의 이야기다. 박가화의 「나는 도도한 고양이이니까」에서처럼 화자가 고양이인 경우, 사정이 복잡하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고양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인가. 고양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고양이를 대변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어떤 사건을 당사자의 명예 등을 위해 우화(寓話)로 표현한 것인가. 그보다, 이 작품이 수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수필이라는 울산수필가협회의 연간지에 실렸으니 수필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다시 고은희 회장의 말로 돌아가 “수필이 (…) 크게 주목 받거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필가의 전략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기왕 수필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처럼 보이지만, 아무나 쓸 수는 없는 글이라는 애매성이 있다면 그 성질을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적어도 근대 문학의 경우, 인간의 자기(내면) 고백에서 시작한다고 할 때, 고은희 회장의 말처럼, 수필은 모든 문학 활동의 진정한 근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근간이라면, 그만큼 원천적이라면, 수필은 ‘소설화(化)’할 수도 시화(化)할 수도 있지 않을까.
수필이 그런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사람들은 수필이란 무엇인지 묻고, 수필다움에 관해 더 많은 논의를 하지 않을까. 바로 그때, 수필을 둘러싼 담론은 더욱 풍성해질 것만 같다. 박가화의 「나는 도도한 고양이이니까」는 그런 의미에서, ‘도도한 고양(高揚)’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