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답잖다

비 내리는 식목일

by 정선생

식목일인데 비가 내린다

불은 꺼지고, 나무는 목을 축이리라


메마른 삶을 적시기에 충분할는지

박 씨 할머니의 눈물을 묽힐 수 있을지

뜬눈으로 밤새우고 눈 감을 새 없이 달리는 이들의

눈동자를 적시기에 충분할는지


벚꽃이 너저분한 길거리에서는

아무도 사진을 찍지 않는다

우산으로 시선을 가린 채 걷는 이들의 어깨가

떨어진 꽃잎처럼 보인다


기댈 수 있는 벗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마는

우산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거리를 흐른다


가로수에게 벗은 없다

도시에 내리는 비는 나무를 기르지 못하니까


식목일이다 그래서

혹은 그래도 비가 내린다

불이 꺼지자 나무가 춥다고 한다

산이며 도시며 나무가 슬프다고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주할 땐 모르다가 마주칠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