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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y 02. 2023

무모(無謀)한 사랑

상대방을 향한 생각이 없는 사랑

  외국인 유학생에게 고백한 남자가 있다고 한다. 더러 있는 모양이다. 일본인이다. 오늘 만난 그들은 어설픈 한국어로 자기 친구의 남자친구가 체육대회의 농구 경기에 출전하기 때문에 응원하러 간다고 말했다. 그나마 학교라는 공간에서 만난 인연이라면 다행스럽지만, 학교에서 만나기 힘든 직장인 남성이라면 걱정이 좀 된다. 듣기로는 데이트 앱으로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사귀는 남자들이 모두 ‘나쁜 남자(나쁜 놈?)’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한국 여성이 아닌 외국인 여성을 대하는 그들이 게임하듯 연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게임이 나왔으니까 재미 삼아 해 본다는 듯이 고백하고, 연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가면 자연스럽게 헤어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연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인과 친구가 같은 시간, 나에게 똑같은 이유로 와 줄 것을 요구한다. 마음이 지치고, 몸도 좋지 않아서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동시에 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때 ‘나’는 동성 친구에게 가야 할까, 연인에게 가야 할까? <다크 나이트>에서 보여준 진지한 딜레마는 아니지만, 제법 고민할 법한 주제다. 물론, ‘-야 할까?’라는 형태가 무색하게 개인의 가치관에 달린 일이지만 말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는지, 고등학생 때였는지, 버스 뒤에 올라앉은 한 남학생 무리가 사랑과 우정 사이에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변변한 연애 한번 해 본 적이 없던 그들은 제법 진지하게 생각을 밝혔고, 대체로 ‘우정’을 선택했다. 그 무리에 속한 내가 했던 대답은 ‘사랑’이었다. 이유는 ‘진정한 우정’은 나의 ‘잘잘못’에 쉽게 금이 가지 않지만, ‘사랑’은 나의 사사로운 행동에도 ‘쉽게’ 잃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했던 저 말은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무섭다. 연인을 사랑하니까 사랑한다는 게 아니라, 연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사랑한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체가 이유이며 목적이고, 수단이다. 사랑하기에 사랑으로써 사랑을 완성한다. 다른 이유나 목적 때문에 사랑을 수단으로 선택하거나, 사랑이라는 이유나 목적을 내세우며 다른 수단을 동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찐(!) 사랑이다.     


  때로는 사랑을 수단 삼아 목적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육욕(肉慾)’일 수도, 물욕(物慾)일 수도 있다. 그들은 연애를 게임처럼 하고, 이른바 ‘진도’를 중시한다. 예전 서사에서 연애하는 사람에게 흔히 ‘어디까지 갔냐?’라고 묻는 것은 연애를 게임처럼 생각하는 사고를 담고 있다. 그런 표현은 사랑에도 단계가 있고, 마지막도 있음을 암시한다. 단계에 맞춰 성취가 있으며, 모든 걸 성취하면 시시해지고 그만두고 싶어진다.     


  반대로 사랑을 목적으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극단적으로 스토킹 범죄와 교제 중 폭력이나 살인 같은 문제들이 그와 연결된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데,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그리워서 따위의 갖은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그것은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행태로 볼 수 있다. 상대방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일삼다가 결국 죽이기까지 한다.     


  안 그래도 사람 만나기 싫고, 사귀기 싫고, 결혼은 더 싫은 요즘이다. 만나고 싶고, 사귀고 싶고, 결혼하고 싶어도 여의치 않은 요즘이다. 이런 시대에 사랑을 왜곡하여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이 설 자리는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제 사랑을 선택하기보다 우정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잃지 않으려는 갸륵한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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