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solo)라는 영화가 있었다. 연애 관련한 영화는 아니고, 고독한 전사의 이야기였다. 학원에서 시험 기간 끝나고? 대강의실에서 보여줬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 ‘솔로’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들에게 ‘싱글’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가르친 때가 있었다. 모두 ‘외국어=영어’라고 여기던 시절, 현지 영어를 가르친다는 사람들이 교정한 것이었다.
라틴어에 뿌리를 두는 이탈리아어에서는 ‘solo’가 ‘혼자’를 뜻하는 말이다. ‘해(태양)’라는 의미인 ‘sole’에서 보듯이, 오직 하나인 존재와의 관련성을 떠올릴 수 있다.
‘유일한 존재’는 대단한 상징성이 있다. 사랑을 고백할 때 귀한 보석을 선물하거나, 당신의 존재가 유일하다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모습도, 유일성이 소중함의 정점임을 짐작하게 한다. 함부로 구할 수 없는 물건을 선물함으로써 귀중한 존재임을 내보이고, 당신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치겠다는 맹세로, 단 하나인 목숨과 사랑하는 사람을 동일시한다.
서른 살까지 ‘모솔(모태솔로)’이면 남자든 여자든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수년 전부터 인터넷에 떠돌았던 모양이다. 댓글에는 짓궂고 선정적인 말들도 가끔씩 보인다. 그 각각의 문제는 제쳐두고, 30년까지 완전한 혼자로 지내면 대마법사가 된다는 말은 어떤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는 반드시 페미니즘적 관점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불편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30년 모솔과 대마법사의 등가교환은 인간을 ‘성애적 존재’로 확정하는 사고방식에 기초하는 듯 보인다.
‘성애적 존재’라는 기초 위에 연애와 결혼, 출산과 양육이 줄줄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관점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 성폭력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여성의 옷차림이 문제’라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남자들은 모두 짐승’이라며 눈살을 찌푸릴 때조차 ‘인간은 성애적 존재라는 관점’을 은연중에 받아들인다.
남자와 여자의 친구 관계를 부정하는 것도 성애적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심지어 ‘동성애’, ‘양성애’적 성향을 고백하는 이에게 여전히 적잖은 사람이 거리를 두려고 하는 이유도, 동성애나 양성애 성향이 있다고 밝힌 그가 자신에게 성적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혐오 섞인 오해 때문이다. 즉, 성애적 존재로서 바라보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성애적 존재가 될 때,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된 인간의 연대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에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모두가 짝을 찾아 가정을 꾸리고 출산과 양육을 해 왔던 것마냥 생각하게 만들면, 연애를 꿈꾸고,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으려는 욕망이 가장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마법사는 애초에 비정상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끔찍한 ‘마녀사냥’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자행되었던 중세 독일에서, 마녀는 기독교 세력이 민간신앙을 내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주경철, 『마녀』 참고).
30년간 연애하지 않으면 마법사가 된다는 말은 솔로인 상태가 그만큼 희한하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다. 그리고 그런 표현들이 지금도 나타난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가 연애하지 않고 결혼을 꿈꾸지 않는 상태를 비정상적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모태솔로’, ‘자신에게 오롯이 관심을 가져서 정말 타인을 향한 관심이 없거나, 타인의 사랑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가 관계성(사회성)을 기르지 못했다고 걱정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혼자 있음’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오히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혼자 있음’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혼자 지내는 생활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면서 함부로 짝을 찾아주려고 하거나, 어설픈 조언으로 상처를 줄 때, 혼자인 사람은 더욱 홀로(솔로)인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사랑은 애초에 ‘너는 너답게’를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싹이 트니까 말이다. ‘혼자임을 사랑하는 나’를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는데, ‘혼자임을 즐기는 나의 삶’을 이 사회가 비정상적이라고 몰아세우는데, 누가 바깥으로 나와 함께함을 즐기겠나 싶다.
나아가, ‘연애 혹은 성애적 경험의 유무’가 마법이라는 신비한 능력을 얻고 잃는 조건이 된다는 사실도 불편하다. 누구든 마법사가 될 수 있고, 마법사가 되면서도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이기를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달리 말하면, 연애하고 결혼한 많은 사람이 결국, 자신의 능력(마법)을 잃어버린 채 후회하며 살아간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성애적 존재로 인간을 규정한 우리 사회와 문화가 오히려, ‘생성의 힘’을 상실했음을 인정하는 꼴이 아닐까? 성애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을 받아들이고, 그 본성 위에 건설된 사회와 문화를 따르라고 그토록 강조했으면서, 결혼한 사람들(당장 부모님)의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결혼 후 자신의 마법 능력(소질, 개성, 꿈, 열린 사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오히려, 키우는 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마법사로 태어났다. 그러나 마법은 사회와 문화가 요구하는 성숙한 자질이 아니기에 없애야만 한다. 절차에 순응하며 마법 능력을 포기한 자들에게도, 절차에 반항하며 마법 능력을 고집하던 자들에게도, 우리 사회는 가혹하기만 하다. 양쪽 모두 불행이라면, 차라리, 내 마음껏 마법을 부리다가 불행해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양쪽 모두 행복하도록 해준다면, 진정으로 마법 같은 일이 될 테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