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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답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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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Nov 05. 2023

낡은 차

붉은 신호다

도로가 멈춘다

낡은 차를 앞에 두고 나도 멈춘다

세월의 흔적이 살을 갉아먹고-혹자는 파상풍일 거라 했지만

힘겹게 호흡하며 잔기침을 쏟는다


새 차로 바꾸지도 세차로 바쁘지도 않은 낡은 차를 바라보며

이 낡은 차에 어울리는 드라이버를 상상하며

운전대 잡은 손에 힘을 준다-도로에 나온 것이 잘못이라도 되는 듯이


푸른 신호다

함부로 대하듯 달려 나가리라 마음먹었던 것인데

낡은 차는 세월의 무게를 증명하듯 천천히 나아간다

일단 출발하자 일단 가보자 일단 버텨보자

언제나 일단으로 점철된 삶인 듯한 속도


눈부신 광기로 지나쳐 내달리는 차들과

우람한 덩치로 뒤를 위협하는 트럭 사이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갈 뿐인 낡은 차


낡은 차의 속도를 뒤따르기에 나는 지나치게 조급하다

앞질러 가면서 곁눈질한다-드라이버의 정체는

어린 시절 만화에 나온 도사를 꼭 닮은 노인이다


변속레버 대신 지팡이를 운전석 대신 흔들의자를

자동차 대신 거북이나 구름을 드리고 싶은

낡은 차에 숨어 정체를 감춘 노인 아니 도인이

자기만의 속도로 험로에 나섰다


타인의 속도를 따라잡으며 희열을 느끼는 낡은 마음의 드라이버 사이에서

진정으로 젊은 마음 어쩌면 늙음도 젊음도 사라진 마음으로

허허실실 하다 딱밤으로 저 멀리 날려버릴 것만 같은 단단한 표정으로


일단, 자 속도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아랑곳없이

거울 속 저 멀리, 자기 세계로 사라지고 있었다

반짝, 아스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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