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결혼 안에서,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인 서울이야.”
아내가 말했다.
뜬금없이, 아무 예고도 없이.
“다음 주에 면접 있어.”
“가게 되면, 서울로 출근할 거야.”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말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 생활비는 오빠가 알아서 해.”
“혼자 살아도 잘 살 수 있을 거야.”
“내일 통장 정리할게.”
결혼 10년 차.
제주살이 7년 차.
나는 지금까지
우리 둘 다 만족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바닷가 산책,
텃밭에 심은 상추,
마트에서 고른 소박한 장보기.
아내도
그걸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내는 오랫동안 참아왔던 거였다.
제주에서 하는 일이
본인이 원하던 일도 아니고,
커리어와도 맞지 않았다고 했다.
말은 안 했지만,
스트레스가 컸던 모양이다.
나는 그저
아내가 조용한 제주를 좋아한다고,
내가 행복해하니까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오빤 행복해?”
“난 행복한데!”
“오빠라도 행복해서 다행이야.”
그 말을 몇 번이나 들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난 아니다’라는 뜻을
그동안 몰랐다.
나는 제주에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다.
정말 많이 찾아봤다.
하지만 마흔 넘은 프리랜서에게
제주는 냉정했다.
그래서 개인사업을 시작했고
수입이 좀 생기나 싶었는데
코로나가 와서 망했다.
결국 생계는
전부 아내가 책임졌다.
그걸 미안해하면서도
그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내는 말없이 견디다
결국 결정했다.
서울에서 스카웃 제안이 들어왔고,
이번엔 본인을 위해 선택한 거였다.
“각자, 한 번 제대로 살아보자.
그리고 1~2년 뒤에 다시 같이 살 방법을 찾자.”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통장엔
200만 원을 남겨두고.
다음 날,
혼자 있는 집에서
밥솥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냉장고를 열었다가, 그냥 멍하니 들여다봤다.
혼자 산다는 건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어색하다.
그녀는 서울로.
나는 제주에 남았다.
부부로 살고는 있지만
우린 지금
다른 방향에서
같은 결혼을 유지 중이다.
나는 이제
내 수입, 내 생활, 내 시간을
온전히 나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게 아내가 바란 진짜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같은 집에 사는 걸로만
증명되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