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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마흔, 제주에 살기로 했다

by 피터팬


마흔 살,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주로 향했다.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 익숙했던 일상, 안정이라는 이름의 틀까지도.
누구에게도 확신받지 못한 선택이었지만,
오직 나 자신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지금 아니면, 정말로 안 될 것 같았다.


한 번쯤은,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숨이 트이는 곳에서
진짜 나로 살아보고 싶었다.


제주는 그런 나를 조용히 받아주었다.
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들판과
검은 돌이 깔린 바닷길,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과
밤이면 고요히 내려앉는 별빛까지.


그 풍경 안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섰고,
때로는 울컥했고,
말없이 울기도 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날도 있었다.
모든 것이 시작될 것만 같은,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바람 거센 날도, 폭우처럼 쏟아지는 외로움도 있었다.
현실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꿈은 손 닿을 듯 멀어지기 일쑤였다.


계획했던 것들은 하나둘 무너졌고
그 무너진 자리엔 쓸쓸함이,
때로는 후회가,
그리고 아주 천천히, ‘새로운 나’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안다.
삶은 늘 뜻대로 흘러가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멈추지 않는 사람에게
어느 순간엔 분명 새로운 계절이 찾아온다는 것을.


당장 무언가 이뤄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흔들리면서도 괜찮다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이 가장 용기 있는 일이라고
제주의 시간은 그렇게 나에게 조용히 말해주었다.


꿈을 품고 떠난 제주에서

현실과 마주하며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가

이제 천천히 시작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귤나무 그늘 아래에서,
바다가 품은 노을빛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매일, 나의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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