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흔 살 피터팬, 제주를 꿈꾸다

퇴사, 비행, 착륙

by 피터팬


나는 10년 차 직장인이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나도 처음엔 오래도록 회사를 다니며 안정된 삶을 꿈꿨다.
정년까지 버티며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적당히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그게 ‘어른의 삶’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주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말했다.


“형은 여기서 나랑 같이 뼈를 묻어야지.”
“난 마흔 되면 떠날 거야.”


그리고 나는 말했다.
“징그럽게 너 늙는 모습까지 봐야 돼?”


그 말들을 주고받고, 다들 웃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나에겐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으니까.
정말로 마흔이 되면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내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마흔 살.

그 나이가 오면, 나는 반드시 이곳을 떠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 있는 좀비처럼, 그저 ‘사는 척’ 하며 살게 될 것 같았다.


잦은 출장, 끝없는 야근, 주말마다 이어지는 업무.
이런 일상에 지친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마음 한구석에 ‘탈출’을 꿈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생각만 할 뿐, 꿈으로만 남긴다.


나는 그 ‘생각’을 ‘현실’로 바꾸고 싶었다.
한 번뿐인 내 삶을 그냥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군 시절부터 나는 어디에도 충성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충성하는 순간, 내 삶은 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적당히’ 살아왔다.
너무 튀지 않게, 너무 빠지지도 않게.


그렇게 버텨온 시간은 어느새 작은 희망에서
슬럼프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본다.
회사를 벗어나 나만의 삶을 사는 것.
하지만 그건 그저 피터팬의 네버랜드처럼,
이룰 수 없는 환상이라고 생각하며 잊고 살아간다.


나도 그랬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랜 친구를 따라 무심코 떠난 여행지에서
내 마음속 꿈이 다시 살아났다.


끝도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
맑은 공기, 고요한 파도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쉼’.
지친 내 마음은 제주에서 조용히 숨을 돌렸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단 한 번이라도, 유유자적하며 나만의 시간을 갖고 살아보자.
그게 힘들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만이라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런 삶을 위해, 나는 대한민국의 최남단 ‘제주’를 선택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온 제주.
이곳에서의 계절을 두 번이나 보냈다.

어쩌면 도망이 아니라, 돌아온 걸지도 모른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다시 시작한 삶.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나는 지금, 내 인생의 방향을 다시 그려가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