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셔틀버스에서 찍힌 얼굴

창에 비친 건, 우리 둘뿐이 아니었다

by 피터팬


2022년 10월, 제주.
성판악에서 윗세오름까지만 오르고
하산해 셔틀버스를 탔다.


은색 차체에 파란 줄이 그려진 한라산 셔틀이었다.
오전 11시 40분.
사람들은 지쳐 있었고,
우린 뒷자리 창가에 앉았다.


여자친구가 창 쪽,
나는 통로 쪽이었다.


차가 출발한 지 10분쯤 지났을 무렵,

여자친구가 조용히 내 팔을 잡았다.


“앞에... 아저씨 봐봐.”
“왜?”
“눈이... 없어.”


앞자리 오른쪽.
검정 모자에 바람막이 차림의 중년 남자.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앉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얼굴이 안 보였다.


그림자 때문인지,
빛 방향 때문인지.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린 피곤했고, 그냥 넘겼다.


숙소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가
여자친구가 갑자기 핸드폰을 던지듯 내게 넘겼다.


“이거 봐봐.”


버스 안에서 찍은 셀카였다.
우리 뒤로, 창 반사가 어렴풋이 보이는 사진.


근데 오른쪽 위,
그 유리창에 사람 얼굴이 찍혀 있었다.


눈이 없었다.
입도 없었고,
피부색도 없었다.


단지 ‘얼굴처럼 생긴 무언가’가
우릴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그 자리는,
분명 사람이 없던 자리였다.


우린 그 사진을 지웠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날 밤엔 괜히 창문 커튼도 꼭 닫고 잤다.



한참 뒤, 서울.
비 오던 날이었다.


출근길 버스에서
창가에 앉아 흐릿한 유리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그 장면이 그대로 겹쳐졌다.


똑같았다.
축축이 젖은 유리,
우비를 눌러쓴 사람,
기울어진 목선.


심장이 순간 멎는 줄 알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제야 보였다.


그건 그냥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었다.
우비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앉아 있던 사람.


그럼에도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이 손에 맺혔고,
머릿속에선 한라산 셔틀 안,
그 사진이 계속 떠올랐다.


이제는 가끔 버스를 타다 보면
창밖이 아니라
창 안을 먼저 본다.


혹시라도
유리 어딘가에 그 얼굴이
붙어 있는 건 아닐까,
그때처럼.


한 번 본 게, 잊히질 않는다.

그게 진짜 무서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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