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산목 아래엔 아무도 없었다

금악리 실종기록

by 피터팬


2017년 여름, 난 제주로 내려왔다.

서른 중반이었고, 육지에서 해 온 일은 다 틀어졌으며, 사람한테도 지쳐 있었다.

그땐 조용히 혼자 지내는 게 가장 절실했다.


친구가 소개해 준 집은 금악리에 있었다.

관광지로 번잡한 애월을 지나 더 안쪽으로, 논과 밭이 늘어진 길 끝에 자리 잡은 마을이었다.

작은 시멘트 양옥집. 마당은 잡초가 무성했고, 창문은 해가 잘 들었다.


이사 온 첫날, 집주인 할머니가 말했다.


“밤에 너무 조용하다고 무섭다 하지 말아요. 원래 그런 동네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시끄러운 데서 지쳐서 왔어요. 이 정도면 천국이죠.”


그 말, 일주일도 안 가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마을은 평소엔 참 조용했다.

아침 6시면 동네 방송이 울리고, 할아버지들이 밭에서 돌아오면 평상이 북적였다.

낮엔 평화로웠지만, 이상하게도 밤만 되면 분위기가 달라졌다.

10시를 넘으면 동네 전체가 숨을 멈춘 것처럼 정적이 감돌았다.

가끔 개 짖는 소리조차 끊겼고, 밖에 나가 보면 가로등조차 희미하게 깜빡이는 구역이 있었다.


그 길 한복판에 서 있는 게 문제의 나무였다.

키가 7미터쯤 되는 팽나무.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팔 벌린 노인이 서 있는 형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목’이라 불렀고, 정초마다 나무 앞에서 제를 지낸다고 했다.

난 종교도 없고 그런 걸 믿지도 않아서, 처음엔 그냥 오래된 풍습쯤으로 넘겼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배를 피웠고, 재가 떨어질까 봐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나무 아래에 꽁초를 버렸다.


바람이 멈췄다. 갑자기. 귀가 먹먹해졌다.

그 순간은 분명히 기억난다. 마치 도심 속 지하철 터널에서만 들리는 내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만 남은 듯한 정적.


별일 아니라고 넘겼지만, 그날 밤 악몽을 꿨다.

누군가 창문 밖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손을 들어 천천히 창틀을 긁었다.

잠에서 깼을 땐 새벽 2시 50분, 등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현관문을 열었더니 마당에 젖은 나뭇잎이 빙 둘러 원을 그리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람 부는 소리려니 했다.

근데 그건 바람이 아니었다.

마당을 걷는 발소리. 조심스레, 맨발로 흙을 누비는 듯한 사각사각한 감촉.


CCTV를 설치했지만, 영상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

그 대신, 새벽 3시 무렵이 되면 카메라에 잡음이 생기고, 렌즈가 나무를 향해 돌아가 있었다.

자동 회전 기능은 끈 상태였다.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뒤, 밭에 물을 주다 마주친 이웃 어르신이 내 팔을 힐끔 보고 말했다.


“요 며칠 잠을 설쳤지? 아프기도 했을 거야.”


“어떻게 아세요?”


“보면 알아. 그 나무 근처에서 뭐 했나?”


“...그냥 지나다가 담배 좀.”


어르신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나무는 누가 감히 넘볼 게 아니야. 그 아래 뭐가 잠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그 말을 듣고 그날 밤, 폰 카메라로 그 나무를 찍어 봤다.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화면 속 나무 아래, 흰 옷을 입은 형체가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카메라를 껐다.

그 길도 피해 다녔다.

당산제 준비 때문에 마을회관에 초대받은 날, 처음으로 그 나무 앞에 직접 섰다.

나무껍질에 박힌 녹슨 못 두 개를 봤다.

말없이 그걸 가리키자, 어르신이 말했다.


“작년 여름, 외지인이 나무를 찍겠다고 밤에 왔다가 며칠 후에... 사라졌어. 짐만 남았고 사람은 못 찾았지.”


요 며칠은 좀 괜찮은 듯했다.

이상하게 깨어나는 일도 줄었고, 밤중 발소리도 끊긴 것 같았다.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도, 이젠 제법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냥, 예민했던 거겠지.


스스로를 그렇게 설득하며 지나갔다.

그러다 무심코 어느 날, 휴대폰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멈췄다.

나는 나무를 찍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폴더 하나에, 당산목 사진이 47장이나 있었다.


모두 밤이었다.

각도도 제각각이었고, 어떤 사진은 집 안 창문 너머에서 찍힌 것이었으며, 어떤 건 마치 나무가 주인공인 듯 중앙에 자리한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장엔 나무 옆에 어떤 실루엣이 보였다.


흐릿했다.

어깨선만 있는 것 같았고, 긴 무언가 머리 같기도, 그림자 같기도 한 게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확대해 보자, 사진이 갑자기 꺼졌다.

앱이 튕긴 것도 아니고, 폰이 꺼진 것도 아니었다.

그 사진만,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며칠 뒤, 이웃 어르신이 묘하게 달라진 표정으로 찾아왔다.


“요즘은... 그 나무 근처 안 가제?”


“네. 말씀하신 뒤론 피해 다닙니다.”


“...잘했어. 괜히 더 가까이 가면 안 돼.”


“근데, 예전에 말씀하신 그 외지인, 지금도 행방 모르나요?”


어르신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하더니,


“당산제가 끝나면, 그 사람 그림자도 사라지겠지.”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였다.


“그 사람 그림자요?”


“...아니다. 아무것도.”


정월 대보름. 당산제가 열렸다.

낮부터 사람들이 제상을 준비하고, 밤이 되자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무 앞에 모였다.

나는 그냥 멀찍이서 지켜만 봤다.

도깨비불처럼 떠 있는 촛불, 절반쯤 눈 감은 무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주문.


그러다... 무당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정적. 바람 한 점 없었고,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나무를 올려다봤다.


“...저기... 아직 있네.”


“뭐가요?”


동네 할머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무당은 눈을 떴고, 정면을 가리켰다.


“그 사람. 작년에 못 박은 사람. 아직 여기에 있어.”


그 말에 몇몇 어르신이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순간,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확신을 느꼈다.

등 뒤가 쨍하고 저렸다.

숨을 참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나무 아래, 그림자 같은 사람 형체 하나가 서 있었다.

가지만 한 줄기 바람도 없는데, 그 형체의 머리카락은 물속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내 방의 거울이 이상해졌다.

원래 침대 맞은편 벽에 설치돼 있던 전신거울이었다.

나는 거울을 마주 보지 않으려 했다.

그 안에서 내 뒤에 무언가가 있는 느낌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거울을 떼서 마당 창고에 넣었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문 바깥쪽 나무에 붉은 실이 묶여 있는 걸 봤다.

가까이 가서 보니, 붉은 실 끝엔 녹슨 못 두 개가 매달려 있었다.


나는 무릎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뒤에서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박으면 안 되나...”


돌아보지 못했다.

그날 밤, 불을 켜 놓고도 잠들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그 마을에 산다.

조금씩 마당이 좁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느 순간부턴 당산목의 그림자가 내 집 담장을 넘기 시작했고, 이제는... 현관 앞까지 닿는다.


가끔 전기불이 꺼질 때면, 내 거실 유리창에 나무 줄기 같은 무언가가 천천히 기어다닌다.

나는 그것이 나무에서 나온 것인지, 그 아래 잠들어 있던 것인지, 이제 구분할 수 없다.


그리고 문득, 사진첩을 열면 찍지 않은 사진들이 또 늘어나 있다.

전부 같은 구도. 같은 나무. 다만, 점점 가까워지는 각도.

마치, 누군가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과정을 찍은 듯한 구도였다.


...어쩌면, 그건 내 손으로 찍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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