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엔, 아직도 누가 있다
“그 안에서 난 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소리였는지, 숨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2006년 10월.
퇴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다.
도시에서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제주로 한 달 머물며 쉬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서귀포 외곽, 삼방산 아래 민박집에서 조용히 지내던 때였다.
사람이 많은 곳은 피했다.
관광지 대신 바닷가나 동네 뒷길을 걷는 걸 더 좋아했다.
그날도 삼방산을 따라 산책을 하다
사찰 뒷편, 바위들 사이를 걷게 됐다.
잡초에 반쯤 덮인 바위 틈 아래
사람 몸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다.
기어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해 보였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이 이상하게 걸렸다.
자연 동굴인가 싶었다.
그런데 안쪽을 들여다보니
직선으로 깊게 뚫린 형태였고,
벽면이 자연 바위가 아닌 듯
반듯하게 깎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자세를 낮추고 몸을 반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금방 깨달았다.
안쪽 공기 흐름이 끊어져 있었다.
입구는 분명히 차가운 바람이 들었는데
세 걸음 정도 들어가자
공기가 탁 막혀 있었다.
냄새가 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안에 있던 공기가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숨이 무겁고 눅눅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 하고 짧은 소리가 났다.
처음엔 바람소리인 줄 알았다.
내가 움직이면서 만든 소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소리는 내 바로 뒤쪽에서 들렸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숨을 참고 있다가 짧게, 나를 향해 뱉은 듯한 숨소리였다.
나는 호흡을 멈췄다.
소리도 멈췄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또 ‘하...’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낸 게 아니라는 걸
그때 확실히 느꼈다.
등에서 땀이 식는 느낌이 있었다.
가볍게 떨림이 손끝으로 전해졌고,
입구 쪽으로 몸을 천천히 뺐다.
몸을 돌리지 않고,
무릎으로 밀듯 뒤로 빠져나왔다.
그 짧은 거리 동안
뒤에서 뭔가 따라 붙는 느낌이 끊임없이 들었다.
입구 쪽 빛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민박집으로 돌아와
그날 저녁,
조심스레 할머니께 이야기를 꺼냈다.
“삼방산 뒤쪽에서 바위굴 같은 걸 봤는데요,
그 안에... 사람이 만든 구조물 같아서요.”
말이 끝나기도 전,
할머니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거, 일본 있을 때 팠어.
그 안에다 총 쏘는 데 만들고,
죽은 사람도 넣었다고 하더라.
지금도 그쪽은 아무도 안 가.”
왜 그런지 묻기도 전에
할머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덧붙였다.
“옛날에도 거기 들어간 총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사람처럼 말 안 했어.
그냥, 서울로 다시 보냈지.”
그날 이후
그 동굴 앞엔 다시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방 안 불을 끄고 누우면
귀 가까이에서
그 짧은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
확실히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안에 뭔가 있었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설명이 안 되는,
하지만 존재한다고밖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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