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긴 적 없는 기록
나는 새별오름을 여러 번 오른다.
사진 찍는 게 취미라, 낮보다 별이 잘 보이는 밤을 선호한다.
그날도 별을 찍으려고 일부러 늦게 올라갔다.
2023년 11월 초, 바람 없고 달도 없는 밤이었다.
차를 공터에 세우고, 삼각대랑 DSLR 하나 들고 오름에 올랐다.
정상까지는 평소처럼 수월했지만, 이상한 기분은 중턱쯤부터 시작됐다.
먼저, 다리가 이상했다.
특별히 힘든 코스도 아닌데,
무릎 아래가 묵직하게 당겼고,
바닥을 디딜 때마다 발바닥 안쪽이 울렸다.
흙길인데도 ‘사각’이 아니라 ‘챠박챠박’하는,
습기 찬 잔디 같은 소리가 났다.
처음엔 기분 탓이라 넘겼다.
정상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뒤에서 두 걸음 정도의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짧은 소리.
나는 뒤를 돌아 랜턴을 비췄다.
아무도 없었다.
산은 원래 이런 소리가 나기도 한다고 생각하며 다시 앞으로 향했다.
그런데, 다시 두 걸음.
똑같은 리듬.
이번엔 바로 뒤였다.
또다시 돌아봤지만, 없었다.
다만 이번엔
숨소리가 들렸다.
바로 옆에서,
숨을 딱 한 번,
짧고 무표정하게 들이쉬는 소리.
“하...”
바람이 아닌,
누군가의 입에서 직접 나온 듯한 소리였다.
심장이 아래로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기계처럼 몸을 돌려 빠르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중엔 이상하리만치 다리에 힘이 풀렸고,
한 발 한 발을 구르듯 뛰었다.
그리고 그때,
앞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흰색 상의에 긴 머리,
멀리선 평범한 여성처럼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인사를 하려다 입을 닫았다.
그 사람이
아니, 그 형체가
몸은 아래로 향해 걷고 있는데,
고개는 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내 쪽을 돌아본 줄 알았다.
그런데 달랐다.
그건 고개가 ‘돌아본’ 게 아니라 ‘꺾여 있었다’.
정확히는,
몸이 아래쪽으로 걸어가면서도,
목은 반대로 돌아가 내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팔이 저리고,
턱 아래가 떨리고,
귀 뒷부분이 얼얼해지는 감각이 처음이었다.
그 형체는 얼굴 표정 없이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아래로 사라졌다.
나는 더는 정상이 아닌 걸 알면서도
올라가든 내려가든 해야 했다.
결국 반대쪽으로 돌아 내려갔다.
서울로 돌아온 건 이틀 뒤였다.
몸살처럼 열이 오르고,
손끝이 얼얼하고,
목 뒤가 묘하게 간지러웠다.
카메라를 정리하던 중,
찍은 기억 없는 사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파일명은 다른 것들과 달랐고,
촬영 시간도 내가 멈춰 있었던 순간이었다.
화면엔 새별오름 흙길,
내가 삼각대 설치하려던 바로 그 장소가 담겨 있었다.
그 사진 안엔
흙길 옆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실루엣이 있었다.
어둡고 흐릿해서 처음엔 몰랐는데,
확대해보면
몸은 옆을 향한 채로,
얼굴만 카메라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은 어둠에 묻혀 형태가 분간되지 않았지만,
고개가 꺾인 각도만은 선명했다.
사진은 바로 지웠다.
SD카드에서, 클라우드에서도.
하지만 지금도 가끔
노트북 랜덤 배경 화면에 그 장소가 뜬다.
새별오름의 흙길.
돌담 옆 언덕.
어디에도 사람은 없는데,
그 배경 속 어두운 덩어리는
항상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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