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림자 아래서

열린 문,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님

by 피터팬


2013년 겨울,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서귀포 남원읍, 바닷가 마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이 빈 채로 2년이 넘게 방치돼 있었고, 서울에서 하던 일도 그만둔 상태였다.

그땐 그냥 어디든, 혼자일 수 있는 곳이면 좋았다.


집은 기억보다 더 작고 눅눅했다.

방마다 곰팡이 냄새가 났고, 거실 바닥은 꺼진 데가 있었다.

해녀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는 20년이 넘었다.

내 기억 속 어머니는 늘 소금기 묻은 옷을 입고, 마당에 대야 하나 놓고 발을 씻던 모습뿐이다.

그 대야는 지금도 창고에 있다.

그대로다.

모서리 깨진 플라스틱, 안쪽엔 해초가 눌어붙은 흔적까지 그대로.


남들은 제주 살면 좋겠다고 한다.

조용하고 공기 좋고, 바다도 있고.

근데 그건 외지인 얘기다.

여기서 오래 살아본 사람은 안다.

가끔, 너무 조용한 동네는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걸.

바다가 너무 가까우면 밤이 무섭다는 걸.


그날 밤도 그랬다.

12월 보름. 달이 유난히 컸다.

잠이 안 와서 마당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바람이 없어서 연기가 곧장 위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바다 쪽에서 ‘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물소리가 아니다.

돌 위에 맨발이 닿을 때 나는 소리.

딱 한 번 들렸는데, 그 순간 등줄기가 찬물처럼 식었다.


이상한 건, 그 뒤였다.

담배를 털고 들어가려고 돌아섰을 때,

현관문 옆 창문에 무언가가 비쳤다.


그림자였다.

내 그림자가 아니라,

반대편에서

그러니까, 집 안쪽 벽을 따라 드리운

‘다른 누군가의 그림자’였다.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당엔 아무도 없었다.

근데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대로, 바닥 위에 있었다.

달빛이 비춰진 방향에선 도저히 생길 수 없는 각도였다.


그림자는... 사람 형체였다.

한 손을 몸 앞에 모은 자세.

어디서 많이 본 실루엣이었다.

해녀 작업복 차림, 얼굴은 숙이고.

그 순간, 머릿속에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겨울.

어머니가 물질 나가시기 전, 이상하게 바닷가를 한참 바라보며 혼잣말하던 모습.

“오늘도... 안 나오면 좋을 텐데.”

그땐 그냥 바다 상태를 말하는 줄 알았다.

근데 그 말,

다른 뜻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이후로

밤이면 절대 마당에 나가지 않았다.

문단속을 몇 번씩 확인하고, 창문 커튼은 끝까지 내렸다.

그래도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은 커튼 아래 틈으로 들어오는 달빛 사이에,

희미한 실루엣이 들렸다.

두 발.

정지한 자세.

정확히 내 창 앞에서.


도망치듯 낮에는 밖을 맴돌고,

밤이 되면 스탠드 불 하나 켠 채로 바닥만 보며 버텼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까.


현관문 앞에 누군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초인종은 없다.

노크도 없었다.

그저

“문 좀 열어 줘.”

...속삭임 같았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TV도 꺼져 있었고, 핸드폰엔 알림 하나 없었다.

그런데 그 소리는 확실히 들렸다.

아주 가까이에서.


“문 좀... 열어 줘...”

두 번째는 더 또렷했다.

나는 얼어붙은 채, 거실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숨이 얕아졌다.

무릎이 떨렸다.


그때,

스르르


현관문이

저절로

열렸다.


바람도 없었고, 문에 손댄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문이 열렸다.

딱, 한 사람 들어설 만한 틈으로.


밖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내 눈은 자꾸만 바닥을 향했다.

현관 앞, 젖은 돌 바닥.

그 위에,

발 그림자가 있었다.


두 발.

나를 향해 선 자세.

실체는 없는데,

그림자는 있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그림자는 거실 타일 위로 스며들 듯

들어왔다.

발소리도 없었다.

냄새도, 바람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확실히

누군가 내 앞에 있었다.


그림자가 멈춘 자리,

딱 그 높이에

차가운 숨결이 느껴졌다.

내 얼굴 앞에서.


그제야 깨달았다.

그림자는,

나를 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기억 나지?

그날... 엄마가 왜 울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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