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이들의 목록

넌, 여기에 없었어

by 피터팬


2017년 6월 20일, 18시 32분 / SC-0 내부, 신원 검증 센터


지하 깊은 곳, 등록되지 않은 구역.

화이트팀이 만든 '신원 소거실'에는 전자 기록도, 출입 로그도 남지 않았다.


철제 격자문 안쪽,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손은 묶이지 않았고, 몸엔 상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이미 수차례 지워졌던 것처럼, 희미했다.


"이름."


무표정한 요원이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속."


침묵.

요원은 책상 위에 놓인 하나의 파일을 펼쳤다.

거기엔 얼굴이 지워진 사진, 불확실한 생년월일, 세 번 바뀐 신분증 발급 내역이 기록돼 있었다.

맨 마지막 장에는 붉은 잉크로 적힌 글자가 있었다.


“삭제 대상 재확인, 상위 내부 접속 기록 소지 가능성 있음.”


요원은 조용히 무전을 눌렀다.


“확인 요청. L코드 대상자, 재분류 여부.”


“보류. 직접 확인 후 보고.”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넌, 여기에 없었어."


같은 시각, 4번 창고 인근 폐창고 / 루카의 위치


바람이 거칠게 불어오고 있었다. 서울 외곽의 황량한 구역. 루카는 차량을 도로 쪽에 세우고, 폐창고 뒷면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그는 무릎을 꿇고, 땅 속 깊이 묻어둔 것들을 꺼냈다.

낡은 하드디스크. 메모리칩. 오래된 기록지 한 묶음.


그 중 하나. 젖은 종이에서 검게 번진 이름 하나가 드러났다.


“정미라. 1988년 3월 2일 실종. RJ-88A, 미등록 탑승자.”


루카는 그 이름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지금도... 그녀가 살아 있다면,

그녀 역시 ‘지워진 목록’ 중 하나로 남아 있을 거야.”


무전기 너머, 핀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이트팀이 만든 목록이 아니라,

우리가 지키려는 목록을 만들자.”


루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짜 이름들을, 다시 기록해야 해."


2017년 6월 20일, 18시 45분 / SC-0 외부, D구역 침입 경보 발생


비인가 차량 한 대가 감지되었다.


센서가 불규칙한 노이즈를 감지했고, 보안 알림창이 동시에 떴다.


경고: 외부 라인에 비등록 시그널 감지. 통신 간섭 발생 중.


요원 하나가 곧장 모니터에 고개를 들이밀며 말했다.


“이 신호... 몇 분 전, 루카가 송신한 좌표와 일치합니다.”


C1이 돌아보며 명령했다.


“차단하고, 삭제해.

그가 지운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지웠다고 남겨.”


같은 시각 / 민간 레이더부지 J-S4 앞, 핀과 아이


핀은 아이를 품에 안고, 허리를 낮췄다.

수풀 사이로 무장 경비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아이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이번엔 절대 너를 지우게 두지 않을 거야.”


아이의 눈빛은 두려움보단, 무엇인가를 꿰뚫는 듯한 깊이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속삭였다.


“그 아저씨... 전에, 나한테 이름을 물어봤어요.”


핀은 놀란 듯 물었다.


“뭐라고 했는데?”

아이의 대답은 단순했다.

“그냥... 웃었어요.”


그 순간, 다시 어딘가에서 신호가 튀었다.


업로드 신호 발생 – RJ-88A 백업 프레임 #002 재생 중


화이트팀이 지운 줄 알았던 또 하나의 프레임이,

전혀 다른 출처에서 살아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목록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keyword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