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발자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더 희미해질 뿐이다
나는 그날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서울에서 내려와 제주를 찍던 시기였는데,
새벽 해무가 낀 염전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잡지 쪽에서 ‘바다 안개’라는 주제를 요구했기 때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구엄리 바닷가를
새벽 네 시에 찾았다.
구엄 바다는 이미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이라 바다는 칠흑빛이었고,
염전 위에는 바다에서 밀려온 안개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가까운 것조차 윤곽이 흐려졌고,
바람이 불 때마다 소금기 섞인 습한 냄새가
목구멍에 걸렸다.
삼각대를 세우며 손을 뻗었는데,
손끝이 젖어 있었다.
공기 자체가 축축했다.
나는 몇 장을 연속으로 찍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파도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알았다.
그건 파도와는 다른 리듬이었다.
낮고, 길게 끊어지는 소리.
사람의 울음이었다.
소리는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정확히는 염전 끝자락에 있는
막힌 창고 쪽에서 났다.
그 창고는 내가 처음 들어설 때부터 눈에 띄었다.
다른 곳은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는데,
거기만 철문이 녹슬고 벽이 검게 얼룩져 있었다.
안내판에도 나오지 않았다.
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나는 무심코 마이크를 켜 두고,
카메라를 멘 채 창고로 다가갔다.
문은 녹슨 철판으로 막혀 있었는데,
가까이 가니 자물쇠가 오래전 부서져 있었다.
손잡이를 당기자,
문은 힘없이 열렸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벽에는 습기 자국이 뱀처럼 기어올라 있었고,
바닥엔 희끗희끗 소금 얼룩이 말라붙어 있었다.
사람은 없었다.
울음소리도 이미 멎어 있었다.
나는 찜찜했지만,
혼자 새벽에 착각을 한 거라 여기고
그냥 촬영을 마쳤다.
며칠 뒤, 사무실에서 사진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모니터를 확대하다가,
나는 손을 멈췄다.
사진 속 염판 위에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사람 발자국.
바닥은 고르게 덮인 소금판이었는데,
분명히 신발자국이 선명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자국은
염판 중간에서 시작해,
창고 문 앞에서 뚝 끊겨 있었다.
나는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그 새벽, 염판 위엔 나 혼자였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서,
며칠 뒤 다시 구엄리를 찾았다.
해가 지기 전이었는데도
염방 주변엔 여전히 안개가 모여 있었다.
관광객들은 모두 반대편 바닷길에 몰려 있었고,
이쪽 끝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창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철문은 그날 그대로였고,
바닥은 젖어 반들거렸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때였다.
파도 소리가 바람을 타고 밀려왔는데,
그 안에 분명히 들렸다.
낮고, 끊어지는 울음소리.
멀리서가 아니라,
바로 앞 철문 너머에서.
나는 카메라를 켜지도 못한 채
뒷걸음질쳤다.
심장이 귀까지 뛰어올라서
숨을 삼킬 수조차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구엄리에 다시 가지 않았다.
사진은 아직도
하드디스크 안에 남아 있다.
발자국이 찍힌 그 사진을 열어볼 때마다,
그 소리가 귓가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파도와 안개 사이로 스며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마지막 울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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