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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앞 고사리

고사리 안개 속으로 사라진 사람

by 피터팬


서울에서 사촌언니가 내려왔어.
고사리철이라고 들떠서 아침부터 난리였지.


“오늘은 진짜 많이 꺾어갈 거야.

냉동실 꽉 채우고, 엄마 친구들 나눠주고 그래야지.”

막 그랬거든.


우리 동네에선 고사리 장마라고 불러.

봄 장마철에 비 오락가락하면서 고사리가 제일 많이 나올 때 있잖아.
그때 뜯으러 가는 건데, 사실 그만큼 사고도 많아.
길 잃고, 빠지고, 넘어지고... 매년 뉴스에 꼭 나오거든.


아무튼 그날도 셋이 같이 갔어.
나, 동네 언니, 그리고 사촌언니.


새벽 네 시쯤 출발했는데 안개가 유난히 심했어.
보통은 아침 여덟 시쯤 되면 걷히기 시작하는데,
그날은 열 시가 넘어도 안개가 안 걷히더라.
사방이 뿌옇고, 사람 그림자도 두세 걸음 앞밖에 안 보여.


출발하기 전에 동네 언니가 괜히 그런 말을 했어.
“오늘 같은 날은 괜히 숲 들어가면 안 돼.
특히 무덤 앞 고사리는 절대 손대면 안 된다고.”


어릴 때부터 다 들어온 얘기라 그냥 당연히 알아듣는데,
사촌언니는 킥킥 웃으면서,
“언니 진짜 옛날 사람 같다. 요즘 세상에 그런 걸 누가 믿어.
핸드폰 GPS 있는데 길 잃을 일도 없고, 그냥 풀인데 뭐 어때.”
이러고 넘기더라.


그러다 무덤 앞에서 실한 고사리를 보더니,
“어머, 여긴 왜 이렇게 잘 자라? 다들 안 꺾나 봐?”
하면서 덥석 꺾어버리는 거야.


동네 언니가 막 소리쳤거든.
“야 거긴 안 돼!”


근데 사촌언니는 또 웃으면서,
“괜찮아. 미신이지 뭐. 나 고사리 여왕 같지 않아?”
그러면서 방금 꺾은 고사리 하나를 귀 뒤에 꽂더라고.


그때는 그냥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냈는데,

돌아보면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어.


열한 시쯤 약속한 지점에 모였는데,
사촌언니가 안 오는 거야.


전화했더니 꺼져 있고.
다시 무덤 있는 데 가봤더니,
고사리 봉지 하나랑 꺾여서 버려진 줄기만 덩그러니 있더라.


그 뒤는 다 알다시피 난리였지.
경찰, 소방 와서 드론도 띄우고, 수색견도 풀고,
사람들이 줄 맞춰서 숲 다 뒤졌는데도 흔적이 없는 거야.
마치 땅속으로 삼켜진 것처럼.


안개는 열한 시가 되어서야 겨우 걷히기 시작했어.
그제야 숲의 윤곽이 드러났지만, 이미 사촌언니는 없었지.


이게 끝이야. 지금도 못 찾았어.


그래서 사람들끼리 하는 말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무덤 앞 고사리는 꺾지 않는다”는 거야.
특히 숲에서 풀을 귀에 꽂으면 숲이 데려간다.


그 말. 어릴 때부터 들었는데,

사람이란 게 다 그렇잖아. 막상 자기 일 아니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거지.

그런데... 이번엔 진짜 데려간 것 같아.


며칠 뒤, 언론 보도가 나왔다.


제주 곶자왈서 고사리 채취하던 여성 실종... 3일째 수색 중
뉴스 앵커는 담담하게 전했지만, 우리 가족에겐 그 문장이 아직도 악몽처럼 남아 있다.


실제로 매년 고사리철이면 곶자왈과 산자락에서 실종자가 발생한다.
2000년대 이후만 해도 수십 건이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 길을 잃었다가 구조되지만, 몇몇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지금까지도 미제로 남아 있다.







책에 수록될 괴담은 독자 여러분의 실제 경험,

전해들은 이야기, 혹은 오래된 전설 등

다양한 형태로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만의 괴담이 있다면 아래 주소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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