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보지 못한 드라마

같은 드라마, 다른 공간, 한 마음.

by 피터팬


아내가 어느 날 툭 던지듯 말했다.

“오빠, 요즘 이 드라마 완전 재밌다. 꼭 봐.”


나는 대답만 건성으로 했다.

“그래? 나중에 볼게.”


솔직히 드라마는 늘 길고,

매번 새로운 등장인물 외우는 것도 귀찮았다.


게다가 혼자 보는 드라마라니,

괜히 시간 낭비 같기도 했다.


그런데 저녁에 밥을 대충 먹고

거실 불을 희미하게 켠 채 TV를 켰다.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아내 목소리가 떠올랐다.


‘재밌다니까, 한번 봐봐.’


그래서 1화를 눌렀다.

‘조금만 보다 말아야지.’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스토리도 빨랐고, 배우 연기도 딱 맞아떨어졌다.


결국 앉은 자리에서

엔딩 크레딧까지 다 보고 말았다.


재미에 취해 전화를 걸었다.

“야, 이거 진짜 재밌더라. 나 1화 다 봤어.”


아내가 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거 봐. 내가 괜히 추천했겠냐.


근데 이제 2화부터는 나랑 같이 보자.”


그날 밤, 우리는 각자 다른 집에서

같은 드라마를 켰다.


서울의 원룸, 제주 집.


전화기는 스피커폰으로 켜둔 채,

아내는 침대에 엎드려 과자 봉지를 열었고,

나는 소파에 앉아 비슷한 과자를 꺼냈다


와삭거리는 소리가 통화 너머로 들리니,

마치 같은 봉지를 나눠 먹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시작했어?”

“응, 주인공 지금 달려가고 있지?”


타이밍을 맞추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내가 먼저 웃으면 아내는 잠시 뒤에야 반응했다.


“오빠, 거기 아직 안 나왔어! 잠깐 멈춰!”


결국 우리는 영상을 멈추고,

“3초 뒤부터 다시!” 하며

하나, 둘, 셋을 맞췄다.


번거로운데도 괜히 웃음이 났다.

함께 본다는 게 이렇게 어설퍼도 좋았다.


드라마 내용보다 더 재밌는 건

서로의 반응이었다.


내가 긴장되는 장면에서 숨을 죽이면,

아내도 반대편에서 같이 조용해졌다.


웃음이 터지는 장면에서는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와

진짜 극장에 같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에피소드가 끝나면

꼭 뒷풀이가 이어졌다.


“야, 저 배우 완전 오빠 같지 않아?”

“아니거든. 내가 저렇게까지는 안 그래.”

“아냐, 표정이 똑같다니까. 지금도 그러고 있어.”


투닥투닥 이어지는 대화가

크레딧보다 더 길었다.


오히려 본편보다

이 수다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같이 보지 못한 드라마.


아니, 사실은 같이 본 거다.


옆에 없을 뿐,

같은 장면에 웃고, 같은 대사에 반응하는 그 순간만큼은

여전히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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