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냉장고를 채우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조금씩 다르다.
아내가 퇴사 후 처음 맞는 장보기였다.
마트 카트에 손을 얹는 순간부터, 서로의 기준이 미세하게 달라진 게 느껴졌다.
나는 가격표를 먼저 본다.
할인 스티커 붙은 것부터 골라 담고,
양이 많으면 무조건 ‘가성비 좋다’며 장바구니에 넣는다.
하지만 아내는 다르다.
요리가 취미인 사람처럼
재료의 신선도, 질감, 브랜드를 먼저 본다.
한 번쯤 사 먹어보고 싶다던 새 소스,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제철 과일 같은 것들.
그러다 결국
‘필요한 것’과 ‘지나가는 욕심’ 사이 어딘가에서
카트 앞에서 조용한 논쟁이 시작된다.
“이건 다음에 사도 되지 않아?”
“아니, 이건 있어야 맛이 제대로 나.”
말은 얌전한데
서로의 배경이 다른 만큼
시선도 조금씩 어긋난다.
예전이었다면
월급날이든 아니든
둘 다 별 생각 없이 담았을 거다.
필요하면 사는 거고,
먹고 싶으면 먹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통장 잔고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굳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습관처럼 입버릇이 되었다.
아내는 그럴 때마다 가끔 서운한 표정을 짓는다.
나도 안다.
그 표정 안에는
자신을 위해 쓰는 돈까지 허락받아야 하는
초조함이 숨어 있다는 걸.
같은 냉장고를 바라보는데
우리가 보는 기준은 꼭 그렇게 다르다.
나는
최대한 오래 버틸 수 있는 재료들,
양 많고 저렴한 것들을 찾는다.
아내는
우리 둘이 좋아하는 맛을 위해,
조금의 ‘작은 사치’를 허용하고 싶어 한다.
퇴사라는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사소한 곳에서 마찰을 만든다.
라면 위에 올릴 파 한 단,
우유의 브랜드,
계란을 10개 살지 30개 살지 같은 것들.
마트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우리는 결국 적당한 지점에서 만난다.
내가 포기한 것 하나,
아내가 내려놓은 것 하나.
그리고 그런 타협들이 쌓여
조금은 덜 완벽하지만
조금은 더 현실적인
우리만의 냉장고가 채워진다.
돌아오는 길,
장바구니가 무거워질수록
묘하게 마음은 가벼워진다.
비슷해지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서로의 기준을
조금씩 조율하는 중이라는 걸
둘 다 알고 있어서다.
가끔은 절약이 이기고,
가끔은 작은 사치가 이긴다.
그게 요즘 우리가
조용히 잘 살아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