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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의 빈자리

월급날, 아무 알림도 뜨지 않는다.

by 피터팬


월급날이었다.


퇴사하고 처음 맞는,

이상할 만큼 조용한 월급날.


화면을 켠 아내가

먼저 한숨을 쉬었다.


“원래 오늘이면 들어와 있었지... 그치?”


맞다.

늘 오늘이었다.


자동이체 날짜도,

카드값 결제일도,

생활비 패턴도 전부

‘그날’ 기준으로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알림도 없고,

통장 잔고는

아침에 봤던 숫자와

단 한 글자도 다르지 않았다.


아내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 진짜

다시 계산해야겠다.”


그 말이 꽂혔다.

우리가 피하고 있었던

현실적인 것들.


월세, 관리비,

아내와 내가 사는 두 도시의 생활비,

왕복 비행기 값,

양쪽 집의 공과금,

고양이 사료와 병원비...


적금은 중단해야 하고,

보험료는 유지할지 말지

하나씩 따져봐야 했다.


그동안 ‘월급’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히 흘러가던 것들이

이제는 전부

우리 손으로 다시 정리해야 하는 목록이 되었다.


아내가 벽 달력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번 달은... 좀 빠듯하겠다.”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웃기지만 웃기지 않은

그 묘한 상황.


우리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지출표를 열었다.


결혼하고 이렇게 길게
돈 얘기를 나눈 적이
처음이었다.


월급이 사라진 자리는

불안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이제 진짜 같이 버텨야 한다’는

각성이 남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현실 앞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 있으니

우리가 조금 더 한 팀이 된 느낌이었다.


비어 있는 통장은

문제를 하나 던졌지만,

우리는 그 문제를

같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게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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