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해도 나가는 돈들.
와이프가 제주로 내려온 뒤,
우리 둘의 생활 리듬도 조금씩 다시 맞춰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서로의 생활 패턴이 겹치자
좋은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현실적인 문제였다.
고정비였다.
집세, 관리비, 전기료, 통신비, 보험료.
내가 혼자 살 때는
“이 정도면 버틸 만하지" 했던 것들이
둘이 다시 살게 되자
확실하게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어느 저녁,
식탁 위에 영수증과 고지서를 늘어놓고 앉아 있는데
와이프가 빼곡한 내역을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오빠... 이거 또 나갔어.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없애자고 했던 거 기억나지?”
목소리는 날카롭지 않았다.
그냥 담담한데,
그 담담함이 더 마음을 찔렀다.
“아.. 그거?
나도 해지한 줄 알았는데.”
와이프는 영수증을 내려놓으며
한숨 대신 짧은 숨을 내쉰다.
그리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말한다.
“괜찮아.
이제 나 여기 있으니까
같이 정리하면 돼.”
그 말 한마디가
어떤 숫자보다 세게 와닿았다.
퇴사한 뒤 내려온 제주에서
분명 와이프도 여러 감정과 불안을 안고 있을 텐데
그 와중에 나를 안심시키는 사람이었다.
나는 영수증을 와이프 쪽으로 조금 밀어주며 말했다.
“그래.
이참에 싹 정리하자.
둘이 하면 금방 끝날걸.”
와이프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크지도, 과하지도 않은 표정.
멀리서 살다가 다시 가까워진 사람만이 가진
따뜻한 미소였다.
고정비는 늘었지만
둘이 함께 앉아 그걸 마주하는 순간은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우리는 숫자를 정리하는 중이었지만
어쩌면 그 시간 내내
다시 시작하는 우리 둘 사이의 간격을
조금씩 메우고 있었던 것 같다.
계산기를 두드리다 멈춘 와이프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오빠랑 이렇게 하루를 같이 보내는 게...
나 요즘 제일 좋아.”
월급의 자리는 비었지만
그 자리에 와서 채워준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게
요즘 우리 둘이 가장 크게 느끼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