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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멈춤의 끝에서야 비로소 내 삶의 첫 발자국이 선명해졌다.

by 피터팬


퇴사라는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흔히 ‘끝’을 떠올린다.


마침표 하나를 찍으면

모든 게 정리될 것처럼 느껴지니까.


그동안의 불만, 억울함, 피로, 관계...

그런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함께 따라온다.


하지만 문을 나서는 순간

곧 알게 된다.


퇴사는 끝이 아니라는 걸.

오히려 모든 ‘정리’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시작’이 열린다는 걸.


퇴사 다음 날 아침.


놀랍게도 세상은 그대로 흘러간다.

출근하지 않아도 회사는 돌아가고

비워진 자리엔 누군가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그렇게 우리는

이전의 역할에서 조용히 빠져나온다.


그러고 나서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일과 나 사이에 쌓인 미세한 먼지들.

늘 쫓기느라 묻어둔 감정들.

한참 밀어둔 마음의 숙제들.


퇴사는

그 모든 것을 드러내는 조용한 조명 같다.


아내는 퇴사 후 첫 주 동안

낯설 만큼 자주 웃었다.


그러다가 어느 밤

침대 끝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 표정엔

희미한 두려움과

가벼운 기대가 동시에 있었다.


나는 조언 대신

그냥 옆에 앉아 숨을 한번 고르게 했다.


퇴사 후의 하루는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누가 답을 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천천히 어색해하고

천천히 찾아가는 수밖에.


퇴사는

살던 삶이 멈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살아야 할 방향을

직접 골라야 한다는 뜻이다.


출근이라는 규칙이 사라지면

의외로 더 많은 선택이 몰려온다.


뭘 먹을지, 어디로 갈지, 어떤 일을 할지.

얼마나 버틸지, 얼마나 벌어야 하는지.


사소한 결정조차

모두 ‘나’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퇴사 이후가

더 어렵고

더 솔직해야 하고

더 많이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


퇴사는 ‘도망’이 아니라 ‘복원’이다.


잃어버린 감정, 흐려진 몸,

무뎌진 나다움 같은 것을

다시 천천히 찾아가는 과정.


아내는 요즘

아침 공기가 좋아졌다고 말한다.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잠시 누웠다가

다시 좋아하는 일을 하며

하루를 느리게 흘려보낸다.


나는 그 느림이

퇴사가 준 가장 명확한 ‘시작’이라고 느낀다.


저 느린 시간 속에서

아내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퇴사는 끝이 아니다.


퇴사 이후의 나를 그려 넣을

커다란 빈 페이지 한 장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그 페이지 위에

새로운 선을 천천히 긋기 시작한다.


망설일 수도 있고

비틀거릴 수도 있고

잠시 멈출 수도 있다.


괜찮다.


원래 ‘처음’은

항상 그런 모양으로 찾아오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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