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견디는 것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퇴사라는 선택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아니었다.
오히려 수개월 동안 끓여온 감정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닥으로 내려앉는 과정이었다.
출근길마다 반복되던
가슴의 답답함,
아무 일도 안 했는데 쌓여가는 피로감,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도
내가 여기 있는 이유를 모르겠던 순간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이자
어느 순간, 아주 조용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
그리고 이어서
더 솔직한 생각도 따라왔다.
“이렇게 계속 버티다가는 언젠가 무너지겠다.”
퇴사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이대로는 더 버티기 힘들어서
결국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화려한 결단이 아니라
더는 미룰 수 없어진 한계의 끝.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퇴사 후 며칠간
내 감정은 묘하게 복잡했다.
후련함과 공허함,
두려움과 이상한 편안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아침 알람이 울리지 않는 대신
책상 위 계산기와 현실적인 숫자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런데도 묘하게
마음 한 구석이 조금은 가벼웠다.
‘아, 적어도 나를 속이진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말할 때
누구도 자세한 이유를 묻진 않았다.
돌아보면
퇴사의 의미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선택.
그리고
이제 다시 나를 살릴 방향으로 움직여도 괜찮다는 허락.
폼나는 장면은 없었지만
적어도 내 마음 앞에서
피해가지 않았다는 사실.
그게 내가 말할 수 있는
퇴사의 진짜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