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팥죽 대신에

- 카레

by Cha향기

언젠가부터 종이 달력보다는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있는 캘린더를 보며 산다. 요즘은 며칠인지 날짜를 모를 때가 종종 있다. 무슨 요일인지만 알 때가 허다하다. 연말이 다가오니 부쩍 더 그런 것 같다. 이럴 때 나이를 의식하게 된다. 며칠 전에는 요일마저 헷갈렸다. 날짜도 제대로 모르게 된다는 것이 씁쓸해진다.


지난 22일 아침에 지인에게서 농담조가 섞인 카톡이 왔다.


[오늘, 어슬렁어슬렁 어디서 팥죽이나 얻어걸려 볼까나]


‘아차, 동지로구나!’ 그제야 벽에 걸린 달력을 봤다. 버젓이 동지(冬至)라고 적혀있다. 1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며 겨울의 절정, 즉 '겨울의 한복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날이다. 그렇다면 나도 동지 맞이를 해야지. 동지엔 동지 팥죽이지.


모바일 앱으로 오전에 팥죽을 주문하면 저녁에 먹을 수는 있겠지만 왠지 찜찜했다. 시장에 나가서 한 그릇 사 올 수는 있겠지만 그걸 사자고 나가는 것도 번거로웠다. 게다가 올해는 애동지라고 한다. 팥죽 대신에 팥떡을 먹는다나? 예로부터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고 했다.


'에라, 모르겠다. 팥떡 대신 약밥이라도 쪄야겠다.'


요즘은 약밥 만들기가 어렵지 않다. 전기 압력밥솥을 이용하면 된다.

집안에 있는 이것저것을 챙겨 약밥 만들기를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찜솥을 꺼내고 무명 보를 챙겨야 하니 일 년에 한 번도 만들기 귀찮은 것이 바로 약밥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밥 하는 것만큼이나 만들기 쉬운 게 약밥이다.


남편이 좋아하는 약밥을 이렇게 동지라는 절기를 핑계 삼아 만들기로 했다. 채로 썰어둔 대추를 냉동실에서 챙겨 내고 견과류 통에서 견과류 한 줌도 꺼냈다. 찹쌀을 2~3시간 불렸다가 간장, 계피 가루, 설탕을 넣고 취사 버튼만 누르면 끝이다. 물론 약밥이 쪄지면 적당한 그릇으로 옮겨 담아 형태를 잡아두었다가 식으면 칼로 잘라 랩으로 싸는 과정도 필요하긴 하다.


약밥을 만들고 나니 뭔가 허전했다. '붉은' 동지 팥죽을 끓이지 않는 대신에 '노란' 카레를 끓이기로 했다. 주섬주섬 재료를 챙겨 카레를 끓였다. 감자, 양파, 당근 정도만 있으면 카레 끓이기 만큼 쉬운 요리도 없다. 예전에는 카레 가루를 미리 잘 풀어놔야 했는데 요즘은 재료가 익으면 그 위에 카레 가루를 솔솔 뿌려주며 끓이면 된다. 카레엔 김치 하나만 있어도 한 끼 밥상이 된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국민 별식이 된 카레, 그러나 내게는 아련한 추억이 있는 음식이다. 애동지에, 팥죽 대신 카레를 끓이다가 오래전 옛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 카레에 얽힌 추억


중학교 1학년 때 혀 짧은 가정 선생님이 앞치마를 입고 가사 실습 시간에 카레 끓이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여더분, 뇨기 보떼요. 뇨건 카데라는 건데용. 여더분, 됴용히 해쭐래요?"

그전까지는 카레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시래기 된장국에 김치만 먹고살았던 내겐 카레는 별미였다. 톡 쏘는 듯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맛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바쁜 엄마는 카레가 무엇인지도 모르셨을뿐더러 그런 별미를 만들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중학교 가사 실습 이후 한동안 카레를 먹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내겐 생소하기만 했던 카레를 종종 먹으며 지내는 친구가 있었다. 꼼이였다. 꼼이네는 아랫담 방앗간 집이었다. 꼼이네 방아 돌아가는 소리는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게 들렸다. 드르렁드르렁이라고 맘 속으로 중얼거리면 방앗소리도 그렇게 들렸고 매롱, 씨롱으로 들린다고 생각하면 방앗소리도 그렇게 났다. '옆집에 불났네. 앞집 애야 불 꺼라!' 그렇게 말하며 들으면 방앗소리도 영락없이 그렇게 들렸다. 그게 참 신기했다. 그래서 꼼이는 시끄러운 방앗간 집에 살아도 나름 상상의 나래를 펴며 살 것 같았다.


꼼이네는 6남매였다. 위로 두 언니는 일찌감치 도회지로 나갔고 나머지 네 명이 올망졸망 방앗간 집에 살았다. 그런데 그 집에 남자애 세 명이 더 있었다. 꼼이에게 오빠 뻘 되는 남자, 꼼이와 같은 나이, 그리고 꼼이 동생 뻘 되는 남자애가 있었다. 그들은 산 너머에 사는 큰엄마네 아들들이었다. 말하자면 꼼이네 배다른 형제였다. 큰엄마는 본가에서 농사를 지으며 혼자 살았고 애들은 아예 꼼이네 집에서 지냈다. 산 너머에서 학교 다니기 불편하니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꼼이네 집은 늘 바글바글했다.


게다가 방 앞 마루에는 고추방아, 쌀방아를 찧으러 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꼼이네 방앗간에서는 참기름도 짰다. 마을 사람들은 방앗간에 오면 그 마루에서 백설기를 나눠먹거나 볶은 콩을 먹기도 했다. 꼼이네 형제들은 방앗소리가 시끄럽거나 마을 사람들이 마루에서 왁자지껄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러는 교복을 빠는 애도 있고 자기 양말을 빨아 널기도 했다. 꼼이네 애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냈고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늘 미소를 띠며 지냈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공손히 인사를 잘했다.


방앗간 옆에 미닫이로 나눠진 방 두 개가 전부였다. 그 애들은 모두 함께 잤다. 그 집 애들은 모두 우등생이었다. 붓글씨를 잘 쓰는 애, 그림을 잘 그리는 애도 있었다. 꼼이는 글씨를 아주 예쁘게 썼다. ‘꼼이체’라는 서체를 내도 될 정도였다. 그러잖아도 복작거렸을 꼼이네 집에 나는 종종 놀러 가곤 했다. 늦은 밤, 꼼이 엄마는 소주를 옆에 놓고,


“이녀러 팔자, 어쩌믄 좋노. 저 불쌍한 자슥들, 어짜믄 좋노?”라고 눈물을 훔쳤다. 그도 그럴 것이 꼼이 아빠는 옆 동네에 세 번째 여자를 두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네 번째 여자랑 대구에서 사는 중이었다. 한마을에 살았지만 단 한 번도 꼼이 아빠를 본 적이 없다. 꼼이 아빠는 여러 여자와 더불어 사느라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냇가에서 걸레를 빨고 있었다. 꼼이 엄마가 앞산에서 무거운 소쿠리를 이고 냇가를 건너고 있었다.


“우리 꼼이가 오늘 학교에서 늦게 오네? 무슨 일 있었나?”

“네, 오늘 선생님이 환경 정리하라고 했어요.”

“우야노, 우리 꼼이 배고프겠다. 내가 카레를 맛있게 해 놨는데, 그거 먹고 있겠지. 카레 먹으라고 쪽지를 적어놓고 나오긴 했는데...”

꼼이 엄마는 꼼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는지 궁금해하며 징검다리를 서둘러 건넜다.


‘아, 꼼이는 엄마가 저렇게 챙겨주는구나, 사랑받고 사는 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꼼이가 부러웠다. 꼼이 엄마가 서두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 집에서는 한 번도 카레를 해 먹은 적이 없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카레를 먹으며 사는 꼼이네가 부러웠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어쩌노, 점심 늦게 먹으믄 물 많이 켤 텐데, 카레 맛있게 먹고 나믄 오후 내내 물 켤 텐데….” 꼼이 엄마는 그런 걱정을 하며 냇가를 건너 서둘러 방앗간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사는 데 바빴던 우리 엄마는 그만큼 우리에 대해 신경을 쓴 적이 없다. 밥을 늦은 시간에 먹으면 물을 켜게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카레를 먹을 때마다 유년 시절, 한마을에 살았던 꼼이 생각이 나곤 했다. 엄마한테 깨알 같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던 꼼이는 분명 멋진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꼼이는 지금, 어디서, 뭘 하며 살까?



카레 만드는 레시피를 대신에 영국 스완지에 사는 올케의 카레 만드는 영상을 올려본다.


https://www.youtube.com/shorts/0AeuWwK1ArQ

[영국 스완지 '올케카세'가 만드는 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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