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 물 한 방울

by Cha향기

숨차게 달려왔던 길을 또다시 달려가라고 한다면 지레 질린다. 제대하는 군인에게 다시 군복무 하라고 하면 그냥 주저앉을 것이다. 얼마 전,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14년 간 간병해 오던 아들을 또 다른 방식으로 돌보게 됐다. 그러나 엄마는 질리거나 주저앉지 않는다. 그냥 직진이다.




요르단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던 분이 우리 아들을 보러 오셨다. 지인을 통하여 우리 아들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며 한달음에 오셨다. 그분은 수지침, 지압, 부항, 뜸 등을 배워 선교지에서 그것으로 주민을 섬기고 봉사하는 분이다.


선교사님은 뇌를 자극하는 다양한 치료를 하셨다. 지압봉으로 발끝, 손끝을 자근자근 눌렀다. 경추 부위를 지압하기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통증을 완화하고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했다. 지압하는 방법만 잠깐 전수해 주실 줄 알았는데 무려 3시간 넘게 땀 흘리며 애를 쓰셨다.


KakaoTalk_20251126_204302761.jpg [침 치료 중]


“질병이 아니라 사고로 투병 중이라 그런지 신체 상태가 좋습니다. 이 방법은 말초 신경에 자극을 주어 뇌를 건드리는 원리입니다. 제가 알려드리는 대로 매일 조금씩 환자를 만져주세요.”라고 하셨다.


그래서 부랴부랴 몇 가지 지압봉을 주문하고 요가 벨트도 구매했다. 집에서 하는 재활 운동은 전동 자전거 태우기, 휠체어에 환자를 태워 거실 베란다에 나와 다른 환경을 느끼도록 하는 것 등이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전동 자전거를 태우면 아들의 근육 손실을 막고 면역력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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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지압 봉]

아들에게 발 보조기를 신겨 경사 침대에 세우기도 했었는데 효과에 비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중단했다. 그렇게 한다고 비틀어진 발목이 제대로 될 성싶지 않았다. 뇌 부상으로 인해 비틀어진 발목은 나중에 수술하면 될 것이라 당장 급한 게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분의 말로는, 발목 근육이 오그라들면 혈액순환이 되지 않게 되어 심각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지압봉으로 오전, 오후에 지압해 주기로 했다. 틈나는 대로 발목을 마사지하며 만져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아들이 회복될 것이란 생각이
언젠가부터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냥 하루하루를 별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안 해 본 것이 없다. 재활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한방 치료를 겸했으니 침도 어지간히 맞았다. 남편이 발 마사지 협회에 가서 직접 마사지 법을 배웠다. 입원해 있으면서 개인 결제하여 도수치료를 별도로 받았고 출장 물리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 심정이었다.


그런 세월을 보냈는데 새삼스럽게 지압법으로 아들을 돌보게 됐다. 지나온 14년처럼 새로 다가올 14년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아들을 간병하며 보내게 되려나? 그러면 우린 팔순을 바라보게 되는데? 아들을 빚어서 다시 만들어도 몇 번을 만들었을 것이다. 기약 없는 시지프스 형벌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무용한 노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가 지금까지 애써 치료해 왔던 시간은 허송세월이었을까?




그날 저녁에, 지인이 소개한 책을 검색하던 중에 북 트레일러 영상을 봤다. 《그날은 그렇게 왔다》라는 책이었다. 생후 6개월에 원인 불명의 병으로 중증 장애가 된 젖먹이가 사춘기 나이가 될 때까지, 13년간 계속된 엄마의 간병 기록이었다. '수많은 시간표 속에서 갈길을 잃었다.'라는 한 문장만 봐도 그분의 심정이 헤아려졌다. 결국 아이를 떠나보내는 그분을 보니 남 일 같지 않았다.


이어서 <식물인간의 안락사를 허락해 주세요>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그분의 아버지가, 우리 아들의 상태와 비슷했다. 그 아버지는 연세가 높다는 것과 질병으로 투병한다는 차이는 있었다. 결국 그분도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만다. 우리 아들의 마지막 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휴대폰 알고리즘에 떠오른 발라드 영상을 시청했다. 한 고등학생이 부르는,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코끝이 시큰거렸다.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 가는 걸 (‘그녀의 웃음소리뿐’에서 발췌)


노래 가사는, 아들이 나보다 먼저 떠나간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아들이 먼저 가면 나는 살아갈 수 없겠다. 그러나 저런 아들을 두고 내가 먼저 떠날 자신도 없다.


이지훈, 그녀의 웃음소리뿐


깊은 밤 남몰래 눈물을 쏟았다. 아들에게 죄책감이 울컥 들었다. 생명이란 온 우주보다도 값진 것인데 지친 엄마가 아들의 회복에 대한 희망을 접으려고 했다는 것이 미안했다. 아들은 병상에서 한 순간도 떨어지지 못하고 지내는 중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엄마는 하루가 25시간이라도 아들과 함께 동행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14년간 아들 입안에 물 한 방울 넣어줄 수 없었는데도 나는 버젓이 살아왔다. 앞으로는 지압이 끝나면 입이라도 적셔주고 싶었다. 연하 검사 소견 상, 음식을 먹이면 기도로 넘어간다고 하여 일체 먹이지 않았다. 연하 장애 환자에게 음식을 먹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혀를 적실 정도로 소량의 물기를 넣어주면 마른 입안이 촉촉해질 것 같았다. 삼시세끼 꾸역꾸역 약을 먹는 아들은 얼마나 입안이 탈까? 침 삼키는 정도로 물을 넣어주면 기도로 들어가진 않겠지.


온장고에 있는 보리차를 한 스푼 정도 종지에 담는다. 아들의 침대를 높인다. 커피 스푼에 개미 눈물만큼 보리차를 묻혀 아들의 입안으로 넣어준다. 아들은 향긋한 보리차를 맛보면 곧바로 입맛을 다신다. 아들이 꿀꺽하며 넘긴다. 사실, 아들이 넘긴 건 보리차가 아니라 입안에 고여있던 침이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커피 스푼으로 물을 넣어준다.


연하 치료 전문가에게 들었던 바로는, 연하 장애 환자에게는, 목으로 넘기기 가장 어려운 것이 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 환자들에게는 연하제를 섞어 걸쭉하게 하여 먹인다. 물 한 방울이라도 조심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이 컥컥거렸다. 멀쩡한 사람도 누워서 물을 입에 넣으면 사레들릴 판인데... 고개를 옆으로 돌려 기도가 막히지 않게 했다. 한결 나은 것 같았지만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물 한 스푼을 죄다 주지 못하고 시늉만 겨우 하고 만다. 그래도 매일 물맛이라도 자극 삼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물 한 스푼을 먹이거나 지압봉으로 아들을 마사지해 주는 것도 좋지만

내가 정녕 할 일은 아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아들 곁에 남아 있는 일이다.


아들에게 물 한 방울도 제대로 먹일 수 없지만

내 곁에, 따뜻한 몸으로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그동안 이 연재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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