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추전
배추전을 부치려고 로켓 배송으로 알배기 배추를 주문했다. 그것 하나 사자고 밖에 나갈 필요도 없다. 오전에 시키면 오후에 당도하니, 세상 참 살기 편하다. 알배기 배추 2 포기에 만 원이 못 됐다.
난생처음 배추전을 부쳤다.
“이거 보기보다 맛있네.”
“그렇죠? 질리지 않는 묘한 맛이네요.”
우리는 배추전을 특급요리나 되는 듯이 맛있게 먹었다.
“갑자기 웬 배추전?”
“어제, 당신이 내 친구 Y한테 카톡 받았잖아요? 그래서 Y 생각이 나서 배추전 부쳐 봤죠.”
그랬다. 어제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어? Y 씨가 내 연락처와 계좌 번호를 알려달라며 카톡이 왔네?”
“그래요? 폰을 잃어버렸나? 무슨 일이지?”
Y와 초등, 중학교를 같이 다녔지만 같은 반이었던 기억은 없다. 그래서 Y는 내 친구이긴 한데 막역하게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고향 친구는 이러나저러나 서로를 잘 알뿐 아니라 부모님들끼리, 형제들끼리도 다 아는 연대적 관계다.
20년 전쯤이었나? 수도권에 사는 친구들끼리 동창회 모임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넷 카페라는 것이 막 시작되면서 소식을 몰랐던 친구들과 연락이 닿았다. 그 모임에 몇 번 간 적 있다. 그때 고향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고 거기서 Y도 만났다.
Y는 일산에서 닭갈비 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식사하러 한 번 오라고 한사코 졸라대서 우리 부부가 일산에 갔던 적이 있다. 큰 식당을 운영하는 Y는 억척같았다. 한창 맛있게 닭갈비를 먹고 있을 때, 따끈한 부침개가 나왔다. 배추전이었다. 가게 한쪽에서 어르신이 쉼 없이 배추전을 부치고 있었다. 옆모습이 낯익어서 살펴보니 Y 어머니였다. 고향에서 스치며 뵈었던 얼굴이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어머나, 오랜 만이네요."
"누구더라? 아하, 그 집 딸내미네. 여기서 볼 줄 몰랐네. 많이 묵어."
Y 어머니는 손님상에 올릴 배추전을 부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그때 배추전이란 걸 처음 먹어봤다. 닭갈비를 먹은 후에 먹는 배추전은 개운하고 쌈박한 맛이었다. 그날 이후로 Y 생각을 하면 신기하게도 배추전이 떠오르곤 했다.
그런 일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내 아들이 큰 사고를 당했다. 그 일을 전해 들은 Y가 몹시 가슴 아파했다.
“우야노? 우야믄 좋노? 친구야. 정신 바짝 차려야 한데이.”
Y는 내가 어떻게 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때 계좌 번호를 물었다.
“내가 매달 조금씩 보내줄 테니 맛있는 것 사 먹고, 차도 마시고 그래라. 친구야.”
Y는 내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랬는지 아예 우리 남편의 계좌와 연락처를 물었다. 가끔 Y에게 고맙다는 문자라도 보내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다만 남편이 연말에 한 번씩 아들 병상 사진과 함께 감사의 연하장을 보내곤 했다. Y는 내 고향 친구이지만 남편과 연락이 닿아 있는 셈이다. 남편이 보낸 연말 연하장 인사에 Y는 이모티콘 하나로 답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Y의 후원은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 아들의 투병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그런데 슬그머니 시작했던 Y의 후원은 6년 동안 계속됐다. 내 편에서는 Y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러던 중 우리 아들은 병원 내규 규정상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중증 환자를 집으로 옮겨 와야만 했다. 과연 그 일을 우리가 해낼 수 있을지 두려운 맘이 생겼다. 그러나 그보다 더 한 일도 할 수 있는 것이 부모다. 아들을 집에서 케어하는 일이 자리 잡힐 무렵, Y에게 연락했다.
“그동안 고마웠어. OO이가 퇴원하여 집으로 오게 됐어. 이제 병원비 걱정은 안 해도 되니 후원금 그만 보내도 된다. 친구야.”
“무슨 소리고?
OO는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다.
부담 갖지 마라.
친구 아들이 곧 내 아들이다.”
Y는 꿈쩍하지 않았다. 한 번 마음먹은 것이니 아예 아들이 일어날 때까지 후원할 모양이다. 아들이 집에서 지낸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입원 생활을 하던 때는 매달 기본적으로 500만 원 정도나 지출 됐었다. 그 버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만 해도 우린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Y는 14년째 우리 아들을 위한 후원을 계속하고 있다. 누가 Y를 좀 말려주면 좋겠다.
배추전을 먹으니 친구 Y가 와락 보고 싶어졌다. 나는 Y를 그냥 고향 친구 중 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Y는 나를 절친이요 벗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동안 Y네 가정에도 크고 작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니까. 그런데도 끝까지 우리 아들을 향한 후원의 끈을 놓지 않는 Y가 금보다 귀한 존재로 여겨졌다.
올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꼭 시간을 내서 Y를 만나야겠다. 내게 이런 지란지교(芝蘭之交) 친구가 있다는 게 새삼 뿌듯하다. 배추전을 종종 부쳐먹으며 Y의 그윽한 정을 되새기고 싶다. 변함없이 친구의 아픔을 나눠지려고 하는 내 친구 Y는 진정한 멋쟁이다.
어쩌다, 나는 이런 좋은 친구를 가지게 됐을까?
★ 이번엔 배추전 레시피를 정리하여 올리는 대신에, '영국 스완지'에서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는 올케의 쇼츠를 올려본다.
https://www.youtube.com/shorts/4LL5JVHW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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