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삼 스틱
며칠 전에 카톡 선물함을 통해 M으로부터 홍삼 스틱을 받았다. M이 여전히 우리 아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맘이 따뜻해졌다. M으로부터 홍삼 스틱을 선물로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5년이었다. M이 공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던 날, M은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우리 아들이 입원해 있던 병원으로 먼저 왔다. 아들이 입원 생활한 지 3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병문안 온 그의 손에 홍삼 스틱이 들려 있었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에고, 군대 생활 하느라 수고 많았죠?" 라며 홍삼 스틱을 받아 들자니, 고맙고 미안했다.
M을 처음 만난 건 2012년 11월이었다. M은 새내기 신입생, 우리 아들은 대학 3학년 때였다. 사고로 하루아침에 누워버린 아들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 M이 왔다. 그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사실, 형을 볼 자신이 없어서 진작 오지 못했어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형이에요. 형은 꼭 살아야 해요. " 그때, M은 자기가 받았던 장학금을 들고 왔다.
”형은 반드시 일어날 겁니다. "
신입생 새내기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듬해, 그는 입대했다.
”앞으로 자주 뵙지 못할 겁니다. 형을 위해 늘 기도할게요. "
군대로 총총 떠나는 M에게 우리는 오래오래 손을 흔들었다. 그런 후 M은 외출이나 휴가를 나왔을 법도 한데 무소식이었다.
그런데 군대에 간 M을 대신하여 M의 어머니가 나섰다. M의 어머니는 개미 군단을 모았다. 만 원, 2만 원을 매월 후원하겠다는 분이 열세 분이나 됐다. 그분들의 응원은 우리 부부에게 살아갈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칠흑 같은 어두운 터널에서 만난 빛이었다.
M의 부모님은 병문안 올 때마다,
"OO이는 일어나서 큰일을 할 거예요."라고 했다.
'큰일은 안 해도 좋으니 의식이 돌아오고 병에 차도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게 내 진심이다.
제대 당일, M은 기발한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군대에서 내내 생각했어요. 어버이날을 맞아 ‘서로 한마음 캠페인’이라는 프로젝트로 카네이션을 팔아보려고 합니다."
그 프로젝트는 마켓 빌리지와 협력하여 카네이션 브로치와 부토니에, 그리고 손으로 만든 작은 지갑 등을 팔아 그 판매수익을 우리 아들 병원비로 후원하는 것이었다. 캄보디아와 스리랑카 내전으로 홀로 된 어머니들이 손수 만든 제품을 이용한다고 했다. 마켓 빌리지는 그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느질하다’라는 모토를 지니고 있었다. 그 물건을 구매함으로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그것을 판매한 수익금은 우리 아들 후원금으로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해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파는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됐다.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지만 선한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나가는 M이 대견스러웠다. 카네이션과 부토니에, 그리고 손지갑을 온·오프 라인으로 판매했다. 온라인에서는 금방 완판 됐다. 오프라인에서, M은 몇몇 대학교 학생회를 찾아가 그 카네이션 판매 취지를 설명하며 물건을 판매했다.
M은 그 프로젝트를 잘 마친 후에 다음 학기에 복학했다. 대학 과정을 마쳤고 대학원도 졸업했다. 그리고 지난해, 결혼했다. M이 군 생활을 마친 후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결혼하는 데에 꼬박 13년이 걸렸다. 그동안 우리 아들은 여전히 병상에서 중증 환자로 투병 중이다.
결혼 이후에는 직장 생활하느라 바빴는지 M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 긴 병에 효자 없는 법이지.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어.'라고 생각했다.
M은 지금도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건강한 정신을 지닌 M이지 않은가?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사람이 바로 M이다.
우리는 M이 보내준 홍삼 스틱을 먹으며
또다시 힘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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