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무를 보며, 한강 작가의 <나무는>을 들으며

- 겨울나기 중인 겨울장미를 봤어요

by Cha향기
▲ 데크길

장미원으로 가는 길은 집 가까이에 있는 명품 산책로다. 비록 장미가 지고 없더라도 장미원 가는 길은 백만 불짜리 둘레길이다. 걷기 운동하기에 참 좋다. 그래서 절친과 함께 나섰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날씨라 겨울에는 집을 나서려면 신경이 쓰인다. 다행히 지난 5일 날씨는 포근했다. 미세 먼지도 없었고 비도 눈도 오지 않았다. 기분이 더욱 좋아진 우리는, 둘레길에 접어들기 전 계양 공원에서 허리 돌리기, 팔 돌리기, 파도타기 등으로 잠시 몸풀기를 했다.


그런 후에 본격적으로 둘레길 걷기를 시작했다. 데크길을 올라 둘레길에 접어들면 야자 매트가 깔려 있다. 왼편 아래로 내려다보면 도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이 빽빽하다. 집 천지다. 그러나 집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콘크리트 세상을 떠나 숲길을 걷노라면 저절로 호연지기가 솟아난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하던 일상을 내려놓고, 잔손 많이 가던 일도 뒤로한 채 맑은 공기 마시며 새소리를 들으니 무릉도원 일원이 된 듯하다.


야자 매트 길이 끝나면 또 데크길이 장미원까지 이어진다. 그 길 좌우에 있는 겨울나무에서 풍겨오는 애상이 한몫한다. 잎을 떨군 나무를 보니 일전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감정들이 울컥 밀고 올라왔다. 나무가 쓰러지지 않고 우뚝 서 있다는 것은 그 나무가 살아있다는 의미다. 그 속에는 귀하디 귀한 생명이 숨을 쉬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겨울나기 하는 중이리라. 추운 겨울을 견뎌야 봄에 푸른 잎을 낼 수 있는 법이다. 삶도 그렇다. 고통과 아픔 뒤에 더욱 진한 향기를 뿜어내듯이.


겨울 장미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좋은 점도 있다. 하늘과 구름, 산과 바람, 그리고 잎을 떨군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오롯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호젓한 풍경을 보며 심호흡하고 있었을 때였다.


"저게 뭐죠? 어머나 장미가 파카를 입었네요."

절친이 가리키는 쪽을 봤다.

"어 그러네? 추울 때는 이렇게 장미를 감싸놓는구나."

"짚으로 엮어서 이렇게 싸두면 내년 봄에 꽃을 예쁘게 피우겠네요."

"그래요. 이런 겨울나기 장면을 보았으니 봄에 다시 만나는 장미는 그 느낌이 다르겠어요(우린 30년 지기 절친이지만 서로 존댓말을 한다)."


▲ 장미 겨울나기

가슴에 묻어두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장미원을 뒤로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장미 없는 장미원에 다녀오는 길이었지만 꽃과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겨울나무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겨울나무 기상은 꽃에서 느끼는 감정과 또 다른 뭉클함을 불러일으켰다. 시린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한 가지를 뻗어 나무에 새집이 덩그러니 지어져 있었다.


"에이, 너무 앙상한 나무에다 집을 지었군요."

"아마 그때는 잎이 무성하여 가지가 이렇게 빈약할 줄 몰랐겠죠? 새가 집터를 잘못 잡았네요."


절친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서 펼쳐보니 겨울나무가 하늘꽃처럼 보였다. 꽃 대신 나무에 꽂힌 산책이었다. 중간쯤에 있는 팔각정을 지나 흔들 그네 의자에 앉았다. 거기서 바라보는 비탈에 선 나무들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겨울나무장미가 없는 장미원에서 겨울나무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휴대폰을 열어 한강 작가가 부르는 <나무는> 을 들었다. 한 번은 유튜브 영상을 보며 음악 감상을 했고 이어서 눈을 감고, 가만가만 부르는 한강의 노랫소리에 젖어들었다.

https://youtu.be/zbhZQvFSVNw?si=ZvpgBMMNNYNsmsrt

나무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

하늘과 나를 이어주며 거기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내가 바라보기 전에
나를 바라보고
내 실핏줄 검게 다 마르기 전에
그 푸른 입술 열어
언제나 나무는 내 곁에 있어
우듬지 잔가지 잎사귀 거기
내가 가장 외로울 때도
내가 가장 나약할 때도(...)
-한강 <나무는> 중에서


찬찬히 흔들리는 흔들 그네 의자에서
<나무는>을 듣는다면
누구나 마음이 안정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9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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